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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예찬
김영호 논설위원 교육학박사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6년 10월 19일(수)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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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김영호 논설위원 교육학박사 | | ⓒ 경북연합일보 | | 40여 년 전에 취업이 되어 대대로 살아왔던 세거지(世居地)를 떠나기 위해 서울행 고속버스에 승차할 때는 상경이란 아름다운 꿈을 이룬다는 기쁨 보다는 고향을 버린다는 생각이 치밀어 눈시울에 연한 눈물이 고였다. 그 당시 젊은 사람이면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것이 시골사람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서울생활을 한다고 생각하니 다시 돌아다 보이는 산하와 옹기종기한 집들의 모습이 예사로 보여 지지 않았다. 도로를 가득 메운 차량이며 고층 건물이 즐비한 서울의 번화한 현대식 건물도 시각을 당기게 하였다. 비록 한옥 골기와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풍경은 답답한 느낌이 없지 않았으나 모두가 사대부의 집과 같이 부귀를 공유하며 생활하는 상류사회의 수도시민이 살고 있는 집처럼 보였다. 경주에도 황남동에는 한옥이 즐비하여 부자촌이라 불렀고, 문천이 유유히 흐르는 교동에는 최부자 집합한옥들이 비록 신라의 귀족가옥이 세구연심에 없어지긴 했으나 그를 대신하는 듯 서민들이 부러워하는 호화가옥처럼 보였는데 그것은 규모면이나 정교한 건축미에서 볼 때 서울의 한옥에 비해 조금도 손색이 없었으나 밀도에 있어서는 많은 차이를 보여줘서 시각적 경련을 경험하게 하였다. 60년대 전만 하더라도 기와집에 사는 사람들은 그래도 밥술께나 먹고 사는 사람들의 집이었다. 그래서 기와집은 어떤 면에서는 부의 상징이기도 했다. 오늘날은 도농 할 것 없이 가는 곳 마다 주상 복합아파트를 비롯하여 초현대식 고급건물이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 공중에서 잠을 자야하는 고층생활에 행복감을 느끼며 금실(琴瑟) 좋게 살아오고 있는 현실은 어쩌면 불각(不覺)의 꿈인지 모른다. 갑자기 9.12지진을 경험한 아파트 주거 시민들은 금방 붕괴 될 것 같은 아파트공포를 느끼며 승강기를 두고 계단을 숨 가쁘게 뛰어내리면서 생을 보전은 하였으나 또 어느 날 어느 때 어떤 규모의 다른 지진이 닥칠지를 몰라 월여가 지난 지금도 그 충격을 잊지 못하고 있다. 목재로 튼튼하게 근년에 지은 한옥은 그 지진에도 몸체는 금 하나 가지 않았고, 오래된 고옥의 한옥 용마루 기와가 다소 날려가긴 하였으나 전체적으로 볼 때 시멘트 건물에 지배 내진성이 높은 것 같다. 그것은 건축기법에서 나타난 차이라 생각된다. 지붕에 기와를 덮기 전에 세로로 촘촘히 걸어 둔 연목위에 산자를 가로로 조밀하게 깔아 묶은 다음 그 위에 점성이 높은 황토에 짚을 잘라 섞어서 고루고루 밟은 흙을 두껍게 바른다. 그런 다음 그 위에 암기와를 눌어 깔고 그 겹쳐진 부분에 다시 점토를 붙여서 수키와를 덮여 깔았기 때문에 지붕은 보통 태풍에도 잘 견딘다. 그것은 아마도 바람이 기와 위로 불어와도 둥글고 매끈하게 과학적·역학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옥은 기둥과 보가 못으로 연결시킨 것이 아니고 끌로 파서 꽉 짜이게 끼웠기 때문에 시멘트 건물처럼 심한 지진에 폭삭 내려앉지는 않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신라시대 때 경주에 자주 발생한 지진에도 불구하고 17만 8천여호의 한옥이 가득했던 것은 안전성 때문일 것이다. 경주가 아름다운 도시로 재생하려면 조상의 과학적인 건축예지를 바탕으로 2, 3층 규모의 신한옥 모델을 구안해서 꾸며져야 경주가 발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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