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논설위원 선석열 | | ⓒ 경북연합일보 | |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큰 명절 중의 하나로 음력 8월 15일을 한가위라고 한다. 한가위는 한자어로 추석(秋夕)·중추절(仲秋節)이라고 하며 이두(吏讀)로는 가배(嘉排)·가배(嘉俳)·가우(嘉優)라고도 한다. 주로 농사를 짓던 우리 조상들에게 있어 봄에서 여름 동안 가꾼 곡식과 과일들이 이맘때에 익어 식량을 거두는 계절이 되었고, 1년 중 가장 큰 보름달을 맞이하였으니 즐겁고 마음이 풍족하였다. 가을은 여름처럼 덥지도 않고 겨울처럼 춥지도 않아서 살기에 가장 알맞은 계절이다. 대한민국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온대기후에서는 가을에 거둔 식량을 저장하여 겨울을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다.[추수동장(秋收冬藏)] 그런데 우리나라의 한가위에 대한 유래는 두 가지가 전해오는데, 두 가지 모두 신라에서 유래하였다.
하나는 신라 초기부터 유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제3대 유리왕 때에 두 왕녀를 중심으로 서울 안의 부녀자를 두 패로 나누었는데, 두 왕녀가 각기 거느리고 7월 15일부터 8월의 한가위 전날인 14일까지 한 달 동안 공동으로 길쌈을 하였다. 8월 14일에 심사를 해서 진 편이 이긴 편에게 대접을 하고 회소곡(會蘇曲)을 부르며 놀았다고 전한다. 또 하나는 일본의 승려 엔닌(円仁)이 기록한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 추석에 대한 유래가 전한다. ‘절에서 박탁(餺飥)과 병식(餠食)-즉 밀가루로 만든 수제비와 과자류라고 했으나 실제로는 만두와 떡-을 먹고 8월 보름 명절을 지냈다. 이는 여러 다른 나라에는 없고 오직 신라국에만 있다. 노승들이 말하기를 “신라국이 발해국(실제로는 고구려)과 싸워서 이날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이 날을 명절로 삼아 음악과 춤을 추며 즐겼다. 이 행사는 오래도록 이어져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온갖 음식을 마련하고 가무와 음악을 연주하며 밤낮으로 이어져 3일 만에 끝이 난다. 지금 이 적산원(赤山院)에서도 고국을 그리워하며 오늘 명절을 지냈다. 그 발해는 신라에 토벌되어 겨우 1천명이 북쪽으로 도망갔다가 후에 되돌아와 옛날대로 나라를 세웠다. 지금 발해국이라 부르는 나라가 바로 그것이다.’
이 문장으로 보면, 신라에 토벌 즉 멸망한 발해는 곧 고구려를 가리키며 그 유민인 대조영이 북쪽으로 도망하여 건국한 발해이다. 여기서 일본 승려 엔닌은 발해가 고구려를 이은 나라라고 인식했다는 중요한 사실도 드러나고 있다. 한편으로는 엔닌과 가까운 시기인 733년 성덕왕 때에 발해가 당나라 등주(登州)를 침공했을 때 도우러 갔던 신라가 발해와 싸워 이긴 날이 중추절과 겹쳤던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추석이 전쟁과 관련된다고 하는 주장은 추석의 말뜻이이나 유래와는 전혀 관계없는 것이다. 당나라에서는 8월 보름날의 활쏘기 행사에 주목한 것도 추석에 추가된 놀이에 불과하다. 그보다 훨씬 이전의 「삼국지(三國志)」 동이전(東夷傳) 삼한의 기록에 파종제(播種祭)와 수확제(收穫祭)의 농경축제에 음주가무를 했다는 사실 가운데 수확제가 추석을 가리킨다고 이해하는 것이 옳다. 그 중에서 특히 진한 즉 신라의 추석이 후대까지 가장 중요한 명절로 정착되었던 것이다.
세시풍속(歲時風俗) 가운데 추석이 되면 아침저녁으로 기후가 쌀쌀하여지므로 사람들은 여름옷에서 가을 옷으로 갈아입는다. 추석에 입는 새 옷을 ‘추석빔’이라고 한다. 인턴 같던 머슴들까지도 추석 때에는 새로 옷을 한 벌씩 해주었다. 이와 같이 추석은 한민족 모두가 서로 도우며 살아온 역사와 전통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현대에도 모두가 이러한 전통을 발전시켜 함께 잘 나누어 가져서 잘사는 대한민국으로 만들어 나가기를 보름달에 빌어보았으면 한다. 우리 속담에서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큼만’이라는 바람이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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