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문무학 논설위원 문학박사 | | ⓒ 경북연합일보 | |
"일찍 어둠을 타 나라를 좀 먹던 무리/ 이제 외람히도 강토(疆土)마저 범(犯)하도다/ 이 나라 밝은 햇빛이 두려웁지 않느뇨// 차마 겨레기로 피를 이은 겨레기로/ 깨닫고 돌아옴을 기다려 믿었도다/ 너 무슨 죄고(罪苦) 시기로 끝내 배반하느뇨// 지옥(地獄)도 하늘이 베푼 마지막 은혜(恩惠)러니/ 오히려 사랑으로 칼을 들었도다/ 보아라 팔월 창공(蒼空)에 흩날리는 깃발을." 청도 출신 시조시인 이호우의 '지옥도 오히려' 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6.25 전쟁 기간 중 대구에서 발행된 「전선시첩」 제 1집에 수록되어 있다. 이 책에는 서정주, 조지훈, 박목월, 구상, 육군소령 김기완, 이윤수, 이효상, 이호우, 김윤성, 박화목의 작품이 있고 국방부 정훈국장 육군대령 이선근의 서문이 있다. 여기에 실린 이 작품들은 1950년 8.15 기념식장에서 낭송되었다.「전선시첩」에 참여하고 1984년 「전선시첩」제3집까지 영인합본을 낸 이윤수는 영인본 책머리에 다음과 같이 썼다.
"낙동강 전선을 사수한 우리 국군들의 선전고투 덕분으로 그 50년의 8·15 기념식을 우리는 우리의 대구 만경관에서 오전 10시에 가졌으며 그 때 전선의 치열한 포 소리가 기념식장까지 은은하게 가슴으로 울려 스며드는 것을 안고 뜻 깊은 기념식을 거행했던 것이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생생하게 얻어진 민족 절규의 시편들을 그 날 힘차게 낭송했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엮어진 제1집을 전후방장병들에게 배포" 하였다고 썼다. 「전선시첩」서문 첫 단락은 "포성에 놀래서인지 산새 한 마리 날지 않는 어느 고지 숲 속에서, 또는 포탄이 떨어져 풀 한 포기 없는 능선 위에서 무궁한 하늘을 즐기며 조국을 위하여 싸우는 숭고한 일선 장병에게 이 시집을 보낸다!" 라고 쓰고, 이어서 "삼라만상에 안겨서 몇 번이고 조국과 민족 그리고 세계의 평화를 가슴 깊이 그리는 착하고 올바른 그대들 용사의 모습보다 더 성스러운 것이 또 어디 있으랴."고 썼다. 지금 읽어도 주먹이 불끈 쥐어지고 가슴이 뛰는 글들이다.
이 글을 칼럼에 소개하는 데에는 세 가지의 이유가 있다. 그 첫째는 2016년, 광복절 71주년에 6·25가 일어났던 1950년의 광복절 상황을 돌아보자는 것이다. 둘째는 6·25는 끝난 것이 아니라 휴전이라는 사실을 상기하자는 뜻이다. 북한은 아직도 그 천인공노할 6·25 아침의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다. 전쟁 준비를 무엇보다 우선하고 있고 핵 개발에 혈안이 되어있다. 마지막으로 이호우 시인의 묻힌 작품을 발굴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 작품은 「전선시첩」에 갇혀 있었다. 작품 전집에도 실리지 않았다. 필자가 처음 민병도 시인과 이호우 전집을 낼 때도 찾지 못한 작품이고, 그 이후에 나온 또 다른 전집에도 실리지 않은 작품이다. 필자가 한국시조시인협회가 발행하는「시조미학」2016년 여름호에 논문으로 보고하여 읽힐 수 있게 되었다. 북한은 달라지지 않았다. 핵개발에 혈안이 된 그들에겐 정말 '지옥도 오히려' 아까운 곳이 아닐 수 없다.
이호우 시인은 1946년 8·15에도 -8·15 일주년을 맞이하여-라는 부제를 달고 '맹서' 라는 작품을 발표했다. 광복절을 보내면서 이 작품들을 읽으며 나라 생각해 볼 일이다. "이 땅에 받은 몸이 이땅에 받히리라/ 겨레 날 괴시고 나는 겨레 앞에/ 한가닥 마음 한길을 고첨 없이 가리라.// 이 강산 고흔양을 정성히 그리리라/ 이백성 높은지조 받드러 노래리라/ 아는이 비록 없으되 탓을 아니하리라// 오천년 닦은터에 탑이 이제 쌓아지다/ 삼천만 조각돌에 이 몸도 게였으라/ 즐거이 밑엣돌 되어 우를우로 고우리//한번 바친몸이 값을 아니 물어리라/ 이 나라 베풀어 신 님의 듯을 등불하여/ 비바람 치는 밤에도 마음 놓고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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