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최재석 연합통신 논설위원 | | ⓒ 경북연합일보 | |
지방의 한 대학병원에 입원 중인 어머니 곁에서 여름 휴가의 마지막 3일을 보냈다. 6인실 병실 한쪽 끝 침대에 작은 몸을 뉜 어머니는 인공 고관절 수술 후 각종 후유증으로 거동을 못 한다. 24시간 옆에서 누군가 돌봐야 한다. 코에는 음식과 약을 주입하는 관이 끼여져 있다. 원래 가뜩이나 마른 데다 석 달째 병상에 있다 보니 이제는 뼈만 남은 듯했다. 90평생을 살아온 어머니의 앙상한 몸을 보다 순간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병실 풍경은 정겨웠다. 80대 할머니 환자를 돌보는 60대 딸은 '방장'을 자처하며 다른 환자 보호자에게 이래저래 싱거운 농담을 건넨다. 그 덕에 잔뜩 침울할 수 있는 병실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지곤 했다. 치매 증상으로 요양원에 있다 갑자기 몸이 아파 입원한 할머니 환자는 50대로 보이는 딸이 병구완했다. 딸은 안타까운 마음에 어머니에게 계속 말을 시켜보지만, 그 어머니는 눈만 멀뚱멀뚱할 뿐 딸의 바람에 호응을 못 한다. 수술 후 혼자 거동이 가능해서 인지 보호자 없이 지내는 60대 환자는 한마디로 점잖은 분이다. 내가 서울에 산다는 얘기를 듣고 KTX를 타고 서울 근교의 딸 집에 갔던 이야기를 수줍게 했다. 빈 침대 2개는 새 '주인'을 기다렸다.
지난 6일 밤에는 리우 올림픽 여자 배구 한일전을 함께 봤다. 내가 해설자로 나서 병실 가족들에게 간간이 경기 내용을 설명했다. 다들 경기 규정은 잘 몰랐지만, 일본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면서 '한국의 딸들'을 열심히 응원했다. 어머니 침대 옆 보호자용 간이침대에 누웠지만 통증에 끙끙 앓는 어머니의 신음에 신경이 곤두서 잠이 오지 않았다. 그간 어머니를 돌보느라 응급실이나 6인실 병실에서 지낼 때 병원이 돌아가는 모습을 고스란히 볼 수 있었다. 간호사들의 친절하고 헌신적인 근무 태도에 감사했고 때론 놀라기도 했다. 그러다 사무적으로 보이는 의사들의 모습에 화가 나기도 했다. 그래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들이 어머니를 치료하고 있지 않은가. 환자 보호자에겐 병원과 의사는 이른바 갑을관계로 보면 '갑' 위치에 있다.
병실 침대에 붙은 이름표에는 환자명과 주치의 이름이 병기돼 있다. 그런데 주치의는 자주 볼 수가 없다. 대신 주치의 밑에서 전문의 과정을 밟는 젊은 의사만 가끔 볼 수 있을 뿐이다. 환자의 상태나 치료과정을 물어보기가 어렵다. 그래서 주로 마음씨 좋아 보이는 간호사에게 묻지만, 그들도 단편적인 내용밖에 알지 못한다. 이번에는 간호사에게 어머니 주치의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러니 주치의는 아니고 전문의 과정 의사와 전화로 연결해줬다. 여느 보호자답지 않게 꼬치꼬치 물으니 전화상으로 들리는 젊은 여자 의사의 목소리에 건조함과 짜증이 느껴졌다. 그래도 참아야지 싶었다. 격무에 시달리는 데다 수많은 환자를 대해야 하는 의사들이 환자 보호자의 심정까지 헤아릴 여유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에게는 어머니가 수많은 환자 중의 한 명이겠지만 나에겐 하나뿐인 어머니다.
어찌 보면 세상의 이치가 다 그렇다. 한 사람에겐 일상적이고 하찮은 일도 다른 사람에겐 특별하고도 중요한 것일 수 있다. 언론사 사회부에는 때론 업무가 힘들 정도로 많은 민원 전화가 온다. 그때마다 기자들은 사연을 귀담아듣기 보다는 잘 설득해 전화를 빨리 끊게 하려는 경우가 많다. 물론 민원 전화가 특종 기사를 낳은 경우도 있다. 나도 친절하게 전화를 받아본 기억이 별로 없다. 언론사 입장에선 수많은 민원 전화 중의 하나일 수 있지만, 어느 한 사람에겐 절박하고 억울한 일로 큰맘 먹고 전화를 걸었을 수 있다는 걸 그땐 잘 몰랐다. 그러니 나도 의사를 탓할 자격이 없다. 사람은 보고 경험한 만큼 느낀다고 했다. 어머니는 아파 누워서까지 자식에게 깨달음을 준다. 병원에서 보낸 '3일'은 세상의 갑을관계, 의료진과 환자 관계, 노인 간병과 의료비 문제 등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 '값진' 휴가였다. 정말이지 이번에 엄청난 병원비 보고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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