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황재훈 연합통신 논설위원 | | ⓒ 경북연합일보 | |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주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장에 깨진 유리를 이어붙인 브로치를 착용하고 나왔다. 재임 시절 주요 행사 때마다 외교적 의미가 담긴 브로치를 착용해 화제를 모았던 그는 미국 주요정당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 후보 탄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이 브로치를 선택했다. 1776년 독립선언 이후 아직 미국에서는 여성 대통령은 물론 여성 부통령도 한 명 나오지 않았다. 유리천장(Glass Ceiling)이라는 용어는 미국에서 여성이나 소수 민족의 고위직 진출을 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의미하는 말로 처음 사용됐다. 대중에게 퍼진 것은 1986년 월스트리트저널에 게재된 기고문 제목에 '유리천장'이라는 표현이 사용된 것이 계기가 됐다. 그 후 30년이 지난 지금 세계 곳곳에서 유리천장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이사벨라 여왕, 엘리자베스 1세, 예카테리나 대제, 선덕여왕…. 사실 세계사에서 여성 지도자가 한 시대나 한 국가의 발전을 이끈 사례를 찾아보기는 어렵지 않다. 15세기 이베리아 반도 카스티야 공화국 여왕이던 이사벨라 1세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스페인 통일의 기반을 마련하고 절대군주제를 확립했다. 그는 당시 재정적 어려움과 신하들의 강한 반대에도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탐험을 후원할 정도로 전략가이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1세는 잉글랜드 역사상 가장 뛰어났던 국왕으로 꼽힌다. 유럽 변방의 조그마한 섬나라 잉글랜드를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으로 성장시키는 데 기초를 다졌다. 프랜시스 드레이크를 앞세워 최강이던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고 제해권을 장악, 16세기 잉글랜드가 대양으로 본격 진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는 남편인 표트르 3세를 폐위시키고 1762년 제위에 올라 대제로 불린 러시아의 여황제다. 법치주의 원칙을 도입하고 귀족들과의 협력체제를 강화했으며, 러시아 영토를 크게 확대해 오늘날 흑해와 지중해로의 진출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우리나라에는 신라 최초의 여왕으로, 김춘추 김유신 같은 인물들을 이끌며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은 선덕여왕이 있다. 지구촌이 여성 리더십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생각해 보면 지금 같이 여풍이 동시다발적으로 거세게 불은 때도 없었던 것 같다. 영국에서는 얼마 전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이후 26년 만에 두 번째 여성 총리인 테리사 메이 총리가 탄생했다.
현재 유럽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다.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가 승리한다면 미국과 영국, 독일의 여성 지도자 3명이 머리를 맞대고 지구촌 문제들을 함께 의논하고 결정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할 수 있을 전망이다. 유럽에는 베아타 쉬드워 폴란드 총리, 에르나 솔베르그 노르웨이 총리 등 다른 여성 지도자있다. 우리나라 외에 아시아에서는 대만의 차이잉원 총통이 여성이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수도 도쿄도(東京都) 지사 선거에서 무소속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후보가 69년 만에 유리천장을 깼다. 경제 분야에서는 수많은 여성 최고경영자(CEO) 외에도 글로벌 경제를 좌우하는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있다. 전 분야에 걸친 여성 지도자의 잇단 등장에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잿더미에서 여성들이 떠오르고 있다"(영국 가디언), "남자들이 어질러 놓은 것들을 치우러 온 새로운 여성민주주의(Femokratie)"(독일 디벨트)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성 지도자들의 장점으로 흔히 소통과 공감 능력, 유연성이 많이 꼽힌다. 나라마다 처한 사정과 개인 성향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대개 실용적이고 극단적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는다. 세계가 갈수록 분열과 갈등의 소용돌이에 빠지는 난국 상황 속에서 새로 무대에 오르는 글로벌 여성 지도자들에 대한 기대는 높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깨진 유리천장 이후의 세상이 더 궁금하다. 여성 지도자의 잇따른 등장이 세계사에 또 하나의 획을 긋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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