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추왕훈 연합통신 논설위원 | | ⓒ 경북연합일보 | |
운전기사에 대한 온갖 '갑질'로 입방아에 올랐던 정일선 현대BNG스틸 사장이 결국 법정에 서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정 사장을 근로기준법 위반혐의로 입건해 조사해 온 고용노동부 서울강남지청은 지난 21일 기소의견으로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정 사장은 최근 3년 간 운전기사 61명을 주 56시간 이상 일하도록 하고 이들 가운데 1명을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눈에 띄는 부분은 경찰이나 검찰이 아닌 고용노동부 산하 기관이 사건을 조사했고 폭행과 관련해 적용된 법규도 형법이 아닌 근로기준법이라는 점이다. 근로기준법은 '사용자는 사고의 발생이나 그 밖의 어떠한 이유로도 근로자에게 폭행을 하지 못한다'(제8조)면서 이에 대한 벌칙으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제107조)을 규정하고 있다.
폭행뿐만 아니라 정 사장이 받고 있는 혐의들이 노사관계에 관한 법규 위반이기 때문에 '근로감독관은 근로기준법이나 그밖의 노동관계 법령 위반의 죄에 관하여 사법경찰관의 직무를 수행한다'(제102조 5항)는 근로기준법 조항에 따라 고용노동부 서울강남지청의 근로감독관이 사건을 수사하게 된 것이다. 형법에 폭행에 관한 조항이 있는데도 근로기준법이 별도로 근로자 폭행에 관한 조항을 두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형법의 폭행(이른바 '단순 폭행') 관련 조항은 '사람의 신체에 대하여 폭행을 가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5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제260조 1항)고 하여 근로기준법보다 낮은 형량을 규정하고 있다.
형법은 또 이러한 폭행죄는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제260조 3항)고 하여 '반의사 불벌죄'로 폭행을 다루도록 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에는 이런 조항이 없어 피해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기소할 수 있다. 근로기준법이 형법과는 다른 폭행 조항을 두고 있는 것은 근로관계의 특수성 때문이다. 노동력은 사고팔 수 있는 재화의 성격을 지녔지만 인격과 분리할 수 없다는 점에서 다른 재화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노동력을 판다는 것은 달리 말해 몸과 마음을 바쳐야 한다는 뜻이다. 거기에 근로자는 사용자보다 경제적으로 열등한 지위에 있고 사업장이라는 환경은 사용자가 지배하는 공간으로 외부와 단절돼 있다. 이런 여러 사정으로 인해 근로자는 사업장에서 사용자에게 폭행당할 위협에 놓일 수 있다. 또 그 폭행은 대등한 사람들 사이의 폭행과는 달리 대항하기가 매우 힘들고 인격적으로 큰 상처를 주게 된다.
경제적으로 예속된 근로자가 사용자에게 맞아가며 일하는 것은 신분제 사회에서는 가능했을지 몰라도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고 믿는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X들은 때려야 말을 듣는다"면서 사업장에서 거침없이 폭력을 행사하는 경영자들이 없지 않았다. 지금은 고인이 된 어느 재벌 그룹 회장은 사내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임직원들의 '조인트'를 까는 것으로 유명했다. 국회 청문회에 나와 기업 임원들을 '머슴'이라고 칭한 재벌 회장도 있었다. 그리고 부끄러운 일이지만, 아직도 적지 않은 사업장과 일부 근로관계에서는 폭력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정 사장 사건을 비롯해 최근 잇달아 터져 나온 '갑질' 사건들이 잘 말해 준다.
일련의 갑질 사건을 통해 사용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얻어야 할 교훈이 있다면 근로자를 폭행하는 행위는 범죄, 그것도 꽤 심각한 범죄라는 점이다. 여기서 폭행이란 직접 타격을 가하는 것은 물론 심한 욕설이나 물건을 집어 던지는 행위 등 위협감을 조성하는 행위를 포함해 사람의 신체에 대한 '일체의 유형력 행사'를 뜻한다. 스페인의 교육운동가 프란시스코 페레는 교육현장에서 체벌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꽃으로도 아이들을 때리지 말아야 한다"고 반박했다고 한다. 사용자 역시 '꽃으로도' 근로자를 때리거나 욕할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근로자는 생계를 위해, 더욱 근사하게 말하자면 '자아실현을 위해'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근로를 제공하고 있을 뿐 결코 머슴도, 노예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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