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선석열 문학박사 | | ⓒ 경북연합일보 | |
지진이란 지구 내부의 에너지가 지표로 나와 땅이 갈라지며 흔들리는 현상을 말한다. 20세기 이후 매스컴이 발달하면서 전세계의 소식을 듣게 되면서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는 지진의 뉴스를 간간히 접해왔다. 한국인은 지진을 우리나라와 별다른 관계가 없는 듯이 여겨왔다. 그런데 7월 5일 밤에 우리나라 그것도 울산 앞바다에서 진도 5.0이라는 지진이 일어나게 되었고 9일 오전까지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 환태평양 연안에 커다란 지진이 일어나 수많은 피해를 보는 뉴스를 들은 직후라 한국에서도 연일 울산 지진에 대한 보도와 안전 여부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 역사상 지진에 대한 기록은 의외로 많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하면 신라에만 해도 60여 회의 지진 기록이 보인다. 그것도 경주를 중심으로 하는 한반도 동남부 일대였다. 게다가 영일만 일대에는 쓰나미가 일었다는 기록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신라인의 경우에는 지진에 대해 민감하고 신중하게 대응했다는 사실이다. 문무왕(661~681)은 당시 대화재나 대홍수가 일어났을 때부터 고민하다가 664년에 2회에 걸쳐 큰 지진이 발생하게 되자 천도를 단행하려고 할 정도였다. 의상법사의 충고로 그만두었지만 681년에도 천도 논의가 나오고 신문왕 때인 689년에는 달구벌(대구)로 천도를 실천에 옮기기도 하였다. 물론 그것은 귀족들의 반발로 인해 실패로 끝났다.
신라에서는 천재지변이 크게 일어나면 국왕의 대변자인 집사부의 장관 시중이 파면되는 일이 허다하였다. 그 중에서도 지진은 시중 파면의 요인으로 자리잡았다. 더욱이 쓰나미가 일어났을 때는 민심이 흉흉해지고 왕권이 위기에 빠지기도 하였다. 그 후에도 지진을 비롯한 재난이 크게 일어나면 삼공(三公)을 면직시키는 것이 전통이 되다시피 하였다. 그것은 유교의 천인합일사상에 의거하여 자연의 재해현상을 하늘의 뜻으로 매우 중요시하였기 때문이다.
신라의 기록을 통해 볼 때 필자는 울산 지진현상은 가벼이 넘길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반도 동남해 연안은 지질적 사정이 특수하다. 울산지진이 일어난 해역에 가까운 울산단층을 비롯하여 일광단층 동래단층 양산활성단층 등이 울진까지 동북방향으로 빗금처럼 줄지어 있다.
필자도 지진에 대한 느낌을 조금은 알고 있다. 2002년 일본에 교환교수로 있었을 때이다. 한일월드컵을 보면서 소맥을 즐겼는데 탁자 위에 있는 술잔이 자꾸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때마다 현기증이 일어서 슬그머니 짜증이 났다. 텔레비전에 진도 4.8이니 5.7이니 하는 문구가 보이면서 별다른 피해는 없다는 자막이 뜨고서야 이게 바로 지진이구나 하고 인지하게 되었다. 일본의 경우 오랫동안 끔찍한 지진의 경험과 이를 기초로 건물의 내진설비와 국민들의 대피훈련이 잘 되어 있다. 반대로 현재 한국인은 아무런 경험이 없다.
7월 5일 밤 8시 33분에 부산 수영강변(동래단층) 동쪽에서 필자는 의자에서 크게 흔들리고 어지럼증이 생기게 되어 앞으로 심각해질 지진이라고 느꼈다. 이전의 천둥소리나 유리창이 흔들린 것과는 비할 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한 지진의 진앙지가 월성원전 고리원전 울진원전 등 한반도 동남부의 활성단층 부근에 가까이 있고 점차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추가원전 건설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몇 년전 일본에서 일어난 지진과 쓰나미가 후쿠시마 원전시설까지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그 여파로 인해 한국 남해의 생선의 오염 의혹까지 환경문제까지 나타났지 않은가. 역사상에서 민감하게 대응한 바와 같이 정부에서는 적극적으로 전쟁위협방지대책을 수립하는 일과 같이 민의에 부응하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강구하게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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