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박정웅 행정학박사 | | ⓒ 경북연합일보 | |
"아아~신라의 밤이여… 금오산 기슭에서 노래를 불러보자…" 원로가수 남인수의 '신라의 달밤' 가사 속의 금오봉을 중심으로 높지는 않으나 그 자태가 당당한 신산(神山)이다. 뿐인가,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김시습의 금오시화(金鰲神話)의 무대가 된 경주 남산은 신라 천년의 역사를 오롯이 품고서 신라의 옛 영화를 회환케 하는 역사적 유물들을 옮겨 놓은 박물관을 연상케 하는 불교의 흔적들이 오롯이 소장된 유적지로서의 역사적 보고(寶庫)이다.
경주의 남산은 신라사의 노천 박물관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문화사의 유적지이다. 460여점의 지정문화재와 정비되지 않고 방치되어 있는 절터며, 불상 그리고 석탑 등은 옛 신라인의 정신적 바탕인 불국토(佛國土)의 유물들이 산재하고 있는 부처님의 땅으로 극락정토를 기리던 흔적들이 오늘날도 57구의 불상과 64개의 석탑 등 313개의 유적이 남산 곳곳에 흩어져 있다.
경주 남산은 남북 8KM 동서4KM 가장 높은 봉우리가 불가 496M의 고위봉으로 경주분지를 가로지르는 산 치고는 작고 얕은 산이지만, 산이 지니고 있는 시간적 깊이와 넓이는 옛 신라의 정기와 역사 그리고 숭불정신을 오롯이 꿰어 차고 있는 우리나라의 정신사적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산이다. 특히, 신라 건국의 태동을 알리는 박혁거세의 탄생설화를 품고 있는 나정(蘿井)이며, 후백제 견훤의 공격을 받고 신라의 종말을 고한 포석정이 산자락에 있어 신라의 역사가 시작되고 끝난 곳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이처럼 초기 신라의 왕궁 터였던 금성까지 품고 있는 오늘날의 남산은 그저 버려진 감을 느끼게 하는 역사의 회환이 안쓰럽다.
남산의 굽이굽이 산 능선과 계곡마다 산재되어 있는 문화적 유적들은 오늘날의 과학적 능력으로도 다듬어내지 못할 산등성이의 탑과 바위에 새겨진 불상들은 옛 신라의 찬란한 예술성과 문화적 가치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음은 천년 전 신라의 문화적 정신사를 되새겨 보는 역사적 가르침의 산실이다. 금오봉에서 용장사 계곡으로 향하는 산마루의 용장사 삼층 석탑은 높이 4.5M로 남산 전체를 기단으로 삼은 듯 새워진 웅장함은 남산 어디에서도 보일 만큼 그 자태가 곧 신라인의 불심을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뿐인가, 경주 남산은 곧 신라의 마음이다. 특히, 경주에 살고 있는 경주인이라면 남산에 깃던 신라의 찬란했던 역사적 무게와 거기에 베여있는 옛 신라인의 정신적 토대 위에서 현세를 살아가는 영광스러움과 자부심에 자긍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경주인 모두를 끌어당기는 마력이 과연 세계를 주목하게 하고 문화적 가치를 숭상할 수 있는 경주인의 마음가짐이 정립되어 있는 가에는 경주인의 한사람으로 매우 우려스러움을 가지게 하는 것은 왜서일까. 경주의 남산과 그 속에 담겨 있는 오늘날의 시대정신은 과연 찬란했던 역사적 가치를 향도할 수 있는 경주인 스스로가 문화사적 가치를 고양시킬 수 있을까를 자문해 본다.
마냥 불교적 정신사나 교리의 참뜻을 그냥 역사 속에 방치하고 현재적 자기만족에 매몰된 것이 오늘날의 경주인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경주에 살고 있는 모두는 그 찬란했던 신라사의 그늘을 단지 해가림으로 이용할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내재된 정신사적 가치를 체현하고 문화적 긍지를 키워 나갈 수 있는 바를 경주인의 자부심으로 길러져야 할 것이다. 그렇다. 남산을 아우르는 신라 정신의 작은 체제라도 경주인의 손으로 다듬어 경주인의 자부심으로 더욱 융성시킬 수 있는 역사적 흔적의 새 길을 다듬는 경주인 모두의 결의가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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