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이사부의 모계(謀計)
김영호 교육학박사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6년 07월 06일(수) 11:44
|
|
|  | | | ↑↑ 김영호 교육학박사 | | ⓒ 경북연합일보 | | 제121학훈단(영남대학교)이 1964년에 창설되고 1966년에 첫 번째로 장교를 배출한 ROTC 4기생이 금년에 임관 50주년을 맞이하였다. 육군 소위로 임관한지가 어언 만50년이란 세월이 지났으니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유기체인 인간이 어찌 만고불변의 체용을 보전할 수 있을까 만은 2년이란 후보생과정을 함께 교육과 훈련을 받으면서, 고락을 다졌던 교우의 정은 잊을 수 없었기에 학훈단과 후배들이 마련한 기념식에서 반가운 만남을 가졌던 것이다. 학훈단 건물 현관에는 역대 기수별 후보생의 명단이 금색 판에 새겨져 있었고, 추억이 될 만한 사적들을 진열하여 역사박물관을 꾸며 지난 세월을 회억해 볼 수 있게 해주어서 감사함을 느끼게 하였다. 연병장에는 음향 설비와 기수별로 자리할 수 있도록 많은 천막의 장렬이 기념식 분위기를 고조시켜 주었다. 강당에서 가진 재학생 후보생과 간단한 대면식이며, 정성껏 마련한 오찬과 기념품 등 어느 하나에 동창의 값진 마음과 정을 아니 느껴 볼 수 없었다. 참으로 고맙고 뜨거운 동창애가 후배들을 위해 마련한 소액의 장학금을 부끄럽게 하였다. ROTC 4기생은 5.16이후 처음으로 실시한 대학구조 조정으로 전학년도에 비해 입학생의 수가 반으로 줄었으며, 제1회 대학입학자격국가고시를 치룬 기수이다. 월남전에 참전하여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면서 나라 재건을 위해 목숨을 담보하였고, 전역 후에는 사우디, 쿠웨이트 등 이국에 파견되어 불편한 기후 조건을 극복하며 건설에 참여하여 외화획득에 열한을 뿌린 기수이다. 그사이 가는 세월에 밀리다가 일선에서 퇴임하여 50년 만에 노령의 나이에 만났지만 그 긍지와 자부심만은 굳건하였다. 그래서 근년에 와서 일본이 깔짝거리는 우리 땅 독도에 가서 태극기를 흔들면서 우리의 국토를 확인할 것을 합의하고, ROTC 로고가 새겨진 모자를 함께 착용하고, 태극기를 흔들며 독도에 상륙하였던 것이다. 이 독도는 신라 내물왕의 4대손인 이사부가 지증왕 때 연변의 장관이 되어 거도(居道)의 권모(權謀)를 도습(蹈襲)하여 마희(馬戱)로써 가야를 속여 취하였고, 지증왕 13년 임진에는 아슬라주 군주가 되어 우산국(울릉도)의 병합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우산국 사람들이 어리석고 사나워서 위엄으로는 항복을 받을 수 없음을 판단하고 모계(謀計)로써 나무로 사자 모형을 많이 제작하여 전선에 가득 실고 그 나라 연안에 갔던 것이다. 거기서 이사부는 "너희들이 항복하지 않으면 이 맹수를 놓아 밟아 죽이겠다."고 하니 그 사람들이 두려워서 곧 항복하여 우산국이 신라에 복속되었다는 것을 「삼국사기」는 기록하고 있다. 1905년에 일본이 독도를 무주지라 주장하면서 영토편입을 시도하여 시네마현에 고시 하였으나, 1946년 연합군총사령관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에 '연합군최고사령관각서' 제677호에서 울릉도, 리앙쿠르암(독도)과 제주도는 일본의 영역에서 제외함을 규정하였고, 일본의 선박 및 국민을 독도 또는 독도 주변 12해리 이내에 접근하는 것을 금지 시켰던 것이다. 여러 문헌에서도 독도가 우리의 영토라는 것을 밝히고 있지만 이 각서만 보아도 독도는 우리의 영토인 것이다. 그래서 영남대학교 ROTC 4기 동기생들은 이곳 독도에서 태극기를 높이 흔들며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목청을 다해 외쳤던 것이다. 조국을 지키는 방패가 된다고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보병50사단 연병장을 돌며 군사훈련 받던 기억을 되살리며 태극기를 흔들었고, 우산국을 복속시킨 '이사부의 모계'에 감명을 느끼면서 독도는 우리의 영토라는 것을 다짐하고 회선을 하니 해수도 그 뜻 아는 듯 조용히 보내주었다.
|
|
|
경북연합일보 기자 - Copyrights ⓒ경북연합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
|
|
|
|
|
|
실시간 많이본 뉴스
|
|
|
|
|
최신뉴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