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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의 상생과 현대의 노예자본주의
선석열 문학박사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6년 07월 04일(월)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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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선석열 문학박사 | | ⓒ 경북연합일보 | | 한국인이라면 장보고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는 신라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에서도 유명한 자본가로 알려져 있었다. 당시 당나라의 동해안 지역에는 남쪽의 양자강 하구 주변에서 북쪽 선동성 등주까지 많은 신라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들은 연안 운송업과 상업에 종사하면서 중국과 신라·일본을 내왕하였고 아라비아·페르시아 상인과 교역하는 등 국제무역에 종사하던 자들도 많았다. 장보고는 선동성 적산촌에 법화원(法華院)을 건립하고 이를 적극 지원하였다. 법화원에는 상주하는 승려가 30여 명이 되며, 연간 500석을 추수하는 장전(莊田)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 천태종 승려로 유명한 엔닌(圓仁)이 당나라로 불법을 배우러가는 여정을 기록한 여행기인 '대당구법순례행기'에 의하면, 법화원은 당나라에서 활동한 신라인의 정신적인 중심지로서 법회 때에는 한꺼번에 250여 명이 참석했던 정도로 규모가 컸다고 한다. 법화원이란 묘법연화경 즉 법화경의 이름을 딴 것이다. 법화경은 보살행을 설파한 것으로 이전의 소승불교에서 대승불교로 나아가는 경전이다. 장보고는 인생의 경험에서 얻은 것을 토대로 법화경을 장려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공생할 수 있기를 바란 것이다. 당시 당나라나 신라 모두 중앙 집권력이 느슨해져 흉년과 기근이 들면 각지에서 도적이 횡행하였다. 바다에서도 주민뿐 아니라 무역선도 해적의 위협을 받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장보고는 신라로 귀국하여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여 해적을 소탕하였다. 적산 법화원을 세워 모든 사람의 안전한 항해를 도모하였고 황해의 무역로를 보호하고 해적을 근절시켰다. 일반 상인들과 같이 자신의 무역선단만 지키고자 한 것이 아니라 모든 상인이 대승적으로 배려하는 대자본가였다. 그야말로 장보고는 Win-Win 전략을 구사한 상생자본주의자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요즘 한국의 자본주의는 어떠한가. 한국의 대기업은 세계적인 굴지의 기업들로 성장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국내에서 그들이 전횡하는 쪼잔한 작태는 천민적인 행태로 나아가고 있다. 구멍가게는 대형 슈퍼마켓이나 마트로 풍비박산이 나버린 것은 오래전의 일이다. 요즘 거대자본주의의 작태가 나타나는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기장군에 대형 아울렛이 들어섰지만 필자는 근래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초상을 치러 미망인이 된 장모를 모시고 묘소에 들렀다가 위로할 겸 새로 생긴 아울렛이나 들러볼 심산이었다. 수십 동의 거대한 매장에 들렀으나 때마침 시간당 46㎜ 이상의 장대비가 내리니 건물 모퉁이 벤치 바닥이 삽시간에 물이 들어찼다. 안전시설의 결여 때문이다. 남은 가족들이 와서 주차장 2층으로 대피했다. 차에 타려고 1층으로 내려가니 그곳도 이미 물바다였다. 여기서부터 문제였다. 차를 몰고 2층으로 올라가려고 했으나 입구가 없어 10여 개의 주차장의 유일한 출구로 나왔다. 5만평 시설의 외곽으로 나가 1㎞를 돌아 다시 들어왔으나, 2층으로 갈 수 없었다. 인턴주차원에게 묻고 있는 사이 뒤에서 팀장의 욕설이 난무했다. 또 한 번 인턴의 비애를 보는 현장이었다. 이런 행태를 보자면 대형매장이 국민의 온갖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시설이 아니라 오로지 매상을 위해 고객을 죽방렴의 멸치로 대하는 것이다. 재래식 매장의 정감과 달리 대기업의 매장은 사람을 한 방향으로 몰아 물건산 놈은 빨리 나가고 살놈만 들어오라는 노예취급의 멸치몰이를 서슴지 않고 있다. 과거에 '일본 놈은 나가고 조선놈은 들어오라'는 모텔의 문구처럼! '상업의 부처(商佛)'로 추앙받는 임상옥의 뜻을 추사 김정희가 그린 상업지도(商業之道)에 이런 말이 있다.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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