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장춘봉 대한민국건국회 경주회장 | | ⓒ 경북연합일보 | |
6·25한국전쟁에서 남침이냐 북침이냐를 두고 왈가불가할 논고의 가치조차 없다. 이는 소련의 비밀문서가 해제되면서 '소련의 팽창주의와 김일성의 적화야욕이 만들어 낸 참극'이라고 밝혀진 것이다. 아직도 종북좌파세력은 양을 탈을 덮어 쓰고 착학 학생들에게 북침이며 늑대의 세뇌를 주입시키고 있다. 이렇게 말하는 이들도 종북좌파세력이다.
1950년 6·25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 당시 이승만 정권의 국내 사정은 박헌영이 남로당을 앞세워 폭동과 선전선동을 주동하면서 공산주의 사상으로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1946년 대구 10월사건은 소련군정과 조선공산당의 정치적 음모에 40여개 노동단체 25만여명이 참석한 대규모 집회사건, 1948년 제주 4·3사건은 도지사 박경훈이 인민투쟁위원장, 제주읍장이 부위원장, 각 면장이 면투쟁위원장이였고 제주도 주둔 9연대 박진경 대대장을 피살하는 등 도내 공산주의 세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가는 사건이다. 1948년 10월 여수순천반란사건은 여수 14연대에 제주도 출동 명령이 떨어지자 군부 내 지창수 상사 등 남로당원 50여명이 주동이 돼 일으킨 군부 반란사건이다.
박헌영은 김일성에게 남침하면 남로당 자체세력에 의해 남한이 붕괴될 것이라고 부추기고 있었다. 이처럼 사회혼란은 극에 달하였고 5~6월 전쟁설도 파다하여 북한의 남침도발 움직임에 대한 구체적인 징후도 포착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국군은 전쟁 발발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당하고 초반에 완패를 당하는 치욕적 굴욕에 오늘 우리가 주목하여야 한다.
6.10 국방부는 군수뇌부를 대규모 인사이동과 부대이동을 시킴으로 사단장이 부대를 장악할 시간적 여유와 예하 부대의 장단점을 파악하지도 못했다. 6.11 공산주의자들의 선전선동으로 사회질서가 남로당으로 악화된 가운데 발동한 비상계엄령을 23.24:00을 기해 해제했다. 이처럼 북한의 무력침략이 노골화 돼 가는 가운데도 6.24 38선 근무병력의 1/3을 휴가를 보냈고 남아 있던 장병들도 외출·외박시켰다.
6.24 저녁에는 육군장교구락부 개관 축하 파티를 열어 채병덕 총참모장이하 군수뇌부와 전국 주요지휘관이 만취한 가운데 연합신문 주필 정국은(鄭國殷)의 주선으로 국일관에서 새벽 2시까지 2차파티로 곯아떨어진 가운데 새벽 3시에 북한의 기습무력침략이 시작돼 힘 한번 못 쓰고 38선이 돌파당한 것이다. 당시 남북한을 비교하면 북한 경제가 남한보다 우월했다. 수풍발전소의 풍부한 전력과 군수기지와 소련의 지원을 받아 최신식 무기로 무장한 북한군이다. 사실 맞대결하여도 우리가 밀릴 상태에 있었는데 어떻게 하여 이런 무방비 상태로 만들어 남한을 송두리 체 북한에 상납하려는 일이 발생 했을까? 남한내 남로당의 활동이 날로 격화되고, 북한의 무력침략이 있을 것이라는 첩보가 보고된 상태에서 말이다.
2차로 국일관에서 술값을 다 대면서 주선한 정국은은 휴전협정 직후 간첩 협의로 체포돼 사형을 당했다. 그러나 정국은에 대한 재판 기록이나 수사기록이 전혀 없다는 것이 의문투성이의 문제점으로 남는다. 국가적 동란을 정국은만 사형시킴으로 그 날의 일을 종결한 목적이 무엇인지 지금도 알 길이 없다. 자 여기에서 우리가 냉철한 판단력을 갖고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군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과 국토를 지키는 마지막 보류며 충성으로 먹고 산다. 북한의 남침설이 지속 대두되고 잇는 가운데 군수뇌부의 대이동, 비상계엄령 해제, 군 병력의 휴가 등 이것은 군사학의 ABC도 모르는 역적행위다.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못할망정 총참모장을 비롯한 군 수뇌부들의 곤드레만드레 작태는 국가 역적(逆賊)이다.
역사란 우리의 잘잘못을 정확하게 짚어나가야 올바른 역사가 되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미래의 방향을 모색할 수 있다. 국내정국이 혼란스럽고 북한의 남침설이 있는데도 군수뇌부의 행동은 공산주의자 행동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이 때 심어진 종북좌파세력을 바로 잡지 않으면 우리사회에 숙주로 기생돼 대한민국의 혈관과 뇌를 파먹어 결국 고사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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