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김영호 교육학박사 | | ⓒ 경북연합일보 | |
‘획죄어천(獲罪於天)이면 무소도야(無所禱也)’라는 말은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라는 뜻이다. 이 말은 공자와 위나라 실권자인 왕손가의 대화에 나오는 말이다. 여기의 천(天)은 의리를 의미한다. 의리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여야 옳은 길이다. 의리를 저버린 사람은 빌 곳이 없다는 것이다. 흔히 말하기를 사람이 신이 아니기 때문에 실수를 할 수 있다면서 잘못에 대해 너그럽게 해석을 하고는 있지만 마땅히 빌어야 할 죄를 지었다면 그것은 자랑이 될 수 없는 행동이다. 즉 의리의 행동이 아니다.
의리에 어긋난 짓을 했다면 그것은 빌 곳이 없다는 극한의 죄가 된다. 사소한 죄는 죄를 지은 자가 죄를 끼친 대상에게 빌면 경우에 따라서는 용서를 받기도 하는 데,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고 하니 그 죄는 마땅히 피할 수 없는 죄가 된다. 피할 수 없는 곳은 막다른 골목이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면 당할 수밖에 없으므로 평소에 대인관계에서 원수가 될 짓을 하지 말라고 명심보감은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죄(罪)’자는 ‘망(网)’과 ‘비(非)’의 결합된 글자이다. 망(网)은 ‘그물에 걸려들게 하다’는 뜻이고 비(非)는 글자의 형상이 ‘서로 등을 지고 좌우로 벌리는 모양’을 나타내어 ‘등지다’, ‘어긋나다’의 뜻으로 잘못을 나타낸다. 그래서 죄의 자의(字意)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그물에 걸리게 하다’. ‘죄주다’의 뜻을 나타낸다.
요즈음 박 모 검사가 말썽이 되고 있어서 유감스럽다. 죄를 다스리는 것은 국민들이 의리에 벗어난 행동을 하지 않고 올바르게 살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인데, 그 대임을 맡기 위해 인생의 다른 길을 포기하고 젊은 시절의 낭만도 유보하면서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부모와 조상과 가문은 물론 모교까지 자랑스럽게 하지 않았던가. 고향과 마을의 입구와 모교의 정문에 대형 현수막을 걸어서 모씨의 아들 모씨의 손자가 사법고시에 합격하였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알렸는데, 죄를 다스리고 예방해야 할 직권을 잘못 수행하여 유방백세에 빛나야 할 이름이 험구의 대상이 되고 말았으니, 참으로 안타깝고 걱정스러운 현실이다.
항간의 뉴스에 모 회사의 대표가 감사원 감사를 무마시켜 달라고 지인을 시켜 1억 원을 박 모 검사에게 전달했다는 진술을 검찰이 확보했다는 것이며, 지인은 그 수표 1억 원을 현금으로 바꾸어서 박 모 검사에게 전달했다고 말해 박 검사를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한다고 하니 참으로 유감스러운 사건이다. 믿고 싶지 않은 일이다.
죄를 다스리는 직책을 맡은 입장에서 그 죄의 그물에 스스로 걸려든다는 것은 공자가 말한 획죄어천이 되어 무소도야의 입장이 아닌가. 이것은 한 개인의 범법적 문제라기보다 더 큰 상위의 개념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경고음이라고 생각된다. ‘현관비리’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확대된다면 이 나라는 총체적으로 범죄국가가 되고 말 것 같아서 걱정스럽기 그지없다.
요즈음 범법문제가 되고 있는 돈에서 보면 ‘1억은 돈도 아니다’라는 것이다. 예전에 미처 몰랐던 추잡한 돈이 되고 있다. 돈을 ‘금전’이라 부르게 된 것을 다시금 생각해야 할 것 같다. 금은 빛나고 인체에 유익한 광물이다. 그래서 값이 비싸고 고귀하다. 금은 잘 간직하고 함부로 다루지 않는다.
‘족이충장(足以充腸)’이라 하지 않았던가. 삼천리금수강산을 자기 이름으로 등기 하지 않아도 우리의 강산이듯이, 은행의 돈이 내 통장에 기장되지 않았지만 우리나라의 돈이 아닌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는 무의한 말이 아니다. 돈 때문에 의리를 저버리는 공직가가 되지 말았으면 좋겠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기도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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