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추왕훈 연합통신 논설위원 | | ⓒ 경북연합일보 | |
브로드웨이 뮤지컬 '해밀턴(Hamilton)'이 대단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2015년 2월 오프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처음 선보인 지 6개월 만에 브로드웨이로 진출했고 그로부터 1년이 채 안 돼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뮤지컬로 확고히 자리 잡을 정도로 흥행에 성공을 거둔 것은 물론 평단의 찬사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열린 토니상 시상식에는 무려 11개 부문을 석권하기도 했다. 뮤지컬의 제목이자 주인공의 이름인 '해밀턴'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미국 건국의 주역이자 초대 재무부 장관이었던 알렉산더 해밀턴을 말한다.
해밀턴의 인생을 극적으로 만든 것은 가뜩이나 성마른 그의 성격에 증오를 더했고 마침내는 목숨까지 잃게 한 애런 버와의 적대 관계일 것이다. 동서고금을 두루 살필 때 정치의 세계에서 '숙적'이라고 부를 만한 관계는 적지 않지만, 해밀턴과 버의 사이는 이런 말로도 부족해서 '운명적 원한'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해밀턴 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버 역시 재능과 열정이 남다른 인재였다. 혁명전쟁, 정치, 법정 등 해밀턴과 버의 활동 무대는 많은 부분에서 중첩됐다. 같은 분야에서 일하다 보면 동지적 관계가 될 수도 있을 테지만 두 사람은 정반대였다.
언제, 무슨 계기로 두 사람이 철천지원수가 됐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추구하는 이념에 화해 불가능할 정도의 간극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기질의 어긋남이 두드러진 것으로 보이며, 여기에는 카리브해 식민지에서 떠돌이 상인의 혼외자로 태어나 출생일조차 불분명한 미천한 출신의 해밀턴과 아버지가 뉴저지대학(프린스턴대학교의 전신) 총장이었던 명문가 출신 버의 태생적 차이가 영향을 미쳤는지 모른다. 어느날 해밀턴의 장인 필립 스카일러와 버가 뉴욕주 상원의원 자리를 두고 맞붙게 됐다. 버의 술수와 공작에 밀려 장인이 낙선했다고 믿은 해밀턴은 버를 정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계기가 있을 때마다 충돌했던 두 사람은 미국의 제3대 대통령을 뽑는 1800년 선거에서 결정적으로 갈라섰다.
복잡하고 혼란한 선거 과정을 거친 끝에 토머스 제퍼슨과 버가 선거인단 득표에서 동수를 기록했고 대통령 선출권은 하원으로 넘어갔다. 연방당을 이끌던 해밀턴은 제퍼슨과도 사이가 나빴지만 그보다 훨씬 더 미워했던 버를 떨어트리기 위해 제퍼슨을 밀어주기로 했고 젖먹던 힘까지 다해 온갖 술수를 동원한 결과 원하던 바를 얻었다. 거의 손안에 넣었던 대통령직을 해밀턴 때문에 놓치게 된 버가 이를 갈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두 사람은 각자 혼외정사나 부패 스캔들이 폭로돼 정치적 곤경에 처할 때마다 그 배후에는 상대방이 있다고 믿었고 그런 의심 가운데 상당수는 사실로 드러나기도 했다. 그러던 와중에 해밀턴이 자신을 비난했다는 내용이 담긴 해밀턴의 장인과 지인 간 편지가 신문에 폭로되자 격분한 버는 해명을 요구했고 해밀턴이 이를 거부하자 해묵은 분노가 폭발한 버는 결투를 신청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1804년 7월 11일 아침 뉴욕에서 각자 나룻배를 타고 허드슨 강을 건너 뉴저지주 위호큰의 숲에 도착한 신생 독립국의 현직 부통령과 전직 재무부 장관은 서로를 향해 피스톨을 겨냥했다.
해밀턴이 쏜 총탄은 허공을 갈랐고 버가 발사한 총알은 해밀턴의 복부에 명중했다. 해밀턴은 맨해튼의 병원에 옮겨졌지만 이튿날 숨졌다. 결투로 목숨을 잃은 것은 해밀턴이었지만 그는 '건국의 아버지'로 미국 역사에 영원히 남았고 그의 얼굴은 10달러짜리 지폐에 새겨졌다. 반면에 해밀턴을 쓰러트린 버는 결투로 인한 살인 혐의에 이어 반역 혐의까지 뒤집어쓰고 미국과 유럽을 전전하다 귀국했으나 다시는 예전의 명성과 권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스태튼 섬의 한 여관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당시 두 사람이 어느 선에서 복수심만 자제했더라도 각자의 인생은 물론 미국의 역사도 나은 방향으로 전개됐으리라는 것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뮤지컬 '해밀턴'에서 결투 끝에 해밀턴을 쏘아 죽인 버는 이렇게 노래한다. "이제 나는 역사의 악당이 됐네. 나는 너무나 어렸고 눈이 멀어 보지 못했네. 나는 알았어야 했어. 해밀턴과 나 모두에게 충분히 넓은 세상이 펼쳐져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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