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최형대 논설실장·사회복지학박사 | | ⓒ 경북연합일보 | |
과학이 고도로 발달한 현재의 한국은 미술계의 위작과 대작 논란으로 떠들썩하다. 미술 즉 그림은 선사시대부터 인류의 존재와 함께 항시 그려지고 존재하여 왔다, 그러나 우리 역사에 그림의 위작에 관한 사건이 사회화된 것은 근자에 와서 부터이다. 이것은 근자에 와서야 작품성의 가치에 대한 척도로서의 환금성이 일반화 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환금성에다 희소성의 결합은 대중의 소유욕망을 한층 배가시키는 요인이 된다. 여기에다 대중 심리의 작용은 미술품의 시장가치를 경쟁적으로 치솟게하여 일반대중들에게는 뉴스로만 알려지게 하고 있다.
이처럼 예술적 가치에 대한 적정한 평가와 유일성과 대중성에 대한 기대와 예술적 자기성취라는 자기소망이 대부분 예술가들이 작품 활동에 있어 현실적으로 닥치는 모든 열악한 환경들을 감내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있다. 얼마 전 대중가수 조영남(71)씨가 언더화가인 송모씨(61)의 손을 사서 자신의 작품을 만들었다는 대작사건이 작품제작에 참여한 송모씨의 입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 이전까지만 해도 박수근씨의 위작사건, 천경자씨의 위작사건처럼 천부적 대 예술가의 모작들이 미술 애호가들을 속여 큰 이득을 노린 위작사건은 있었지만 예술가인 척 하면서 타인 손을 빌려 지신의 환경을 바꾸려는 대작사건은 처음이다.
위작과 대작은 몇 가지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박수근, 천경자, 이우환씨의 위작사건은 위작에 작가가 공조하고 있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원작들이 이미 유일성의 보장에다 예술성에 대한 대중의 가치평가로 거액의 가치를 인정받은 위력에 편승하려고 원작의 가치를 훔쳐서 거액의 사취를 목적으로 하는 이의 모의 일어났기에 원 작가는 도덕적으로 논란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조영남의 대작 사건은 예술가라고 자칭한 조씨가 자의적으로 도모하였다. 조씨의 경우 예술계에서 쌓아온 미술품 거래에 대한 공신력에 편승하여 자기 이득을 취하려는 도모로 일어났다. 조씨는 작품의 예술성 평가로 나타나는 위력 보다는 대중가수로서의 대중적 인지도와 노래에 대한 대중성의 위력을 자기미술품에 자의로 전가케 하여 자신과 자기작품의 평가를 받으려 하였다. 그래서 가요와 미술에 대한 대중 평가의 기준을 혼란케 하여 양쪽 모두로 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대중 유행가 가수 활동으로 형성된 사회적 지지를 자신의 인품이나 권력으로 착각한 상태에서 나타난 절제되지 못한 행위였던 것이다. 자기작품의 예술적 가치에 대한 대중적 인정을 기다리며 평생 예술 혼을 불태워 온 벽면화원들의 절치부심의 마음과 모든 자원을 투자하여 닦아온 예술적 자질을 자신의 한 끼 밥값보다 못한 10만원에 강탈해 갔다. 그 뿐인가, 그렇게 눈물로 만들어진 그림을 덧칠 몇 번으로 가장(假裝)하여 자신의 명성으로 포장하여 예술 애호가들에게 고가로 팔았다. 이는 분명 대작과 대작된 그림의 위선적 거래의 중심에 있던 조씨에 의해 저질러진 한국 미술계와 한국 음악계 그리고 그림과 음악의 지지소비층을 우롱한 사건이다.
이는 대중의 지지를 먹고 사는 사람들의 대중에 대한 도덕적 의무감의 결여에 대한 사건이다. 즉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예의의 상실로 일어난 자만적 허세행위로 기본적 예의에 대한 경솔함이 그대로 노출된 것이다. 부끄럽다. 이런 사람에게 국민들은 환호하고 앙코르를 외쳐댔단 말인가? "미술계의 관행인데 나만 왜?"라며 당당하게 항변하고 "입 때문에 쫄딱 망했다" 며 콘서트장에서 대중에게 코메디를 펼쳤다. 조씨에 대한 법률적 판단은 법원에서 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조씨는 미술계와 그의 노래를 들어준 전 국민들에게 충분한 사과와 보상을 하여야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