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도경환 국방전우신문 별동대 대장 | | ⓒ 경북연합일보 | |
6.25전쟁의 폐허와 아픔을 뒤로하고 세월은 무심히 흘러 반세기를 지나 어느듯 66년이 되었습니다. 6.25는 우리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이고 아픔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아픔을 얼룩진 가슴에 위로와 보람으로 채워져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이 편안한 노후를 보내셔야 할 것입니다. 1950년 6.25전쟁으로 인하여 양측은 200만 소중한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산가족의 고통과 분단의 아픔을 겪게 되었습니다.
베트남 전쟁에는 35만명이 파병되었고 전사자가 5,000여명, 전상자가 1,500여명 이었으며, 고엽재 환자가 120,000여명 추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희생과 아픔 속에서도 6.25전쟁이후 한강의 기적을 일군 3대 요인이었습니다. 1965년 베트남 전쟁은 100불이 안되던 경제성장 2만 불 시대를 지나 3만 불의 선진국이 되었으며 G20 의장국으로서 초석과 원동력이 이 모든 성과는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첫째는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들과 참전용사들이 계셨기에 가능했습니다. 그 후 산업화 역군으로 산업의 현장에서 피땀을 흘리신 노고가 오늘의 대한민국을 한국전쟁을 취재해했던 영국기자는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어나기를 기다리는 격이라고 한국실상을 혹평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장미꽃이 피어나게하는 기적을 이루어 냈습니다. 둘째는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으로 대략 10억달러 정도의 자금유입이 경부고속도로는 한일 기본조약에서 얻은 차관과 미국에서 베트남 파병 대가이며 전우들의 피와 땀이 서려있고 생명의 값으로 건설된 것입니다.대한민국은 경부고속도로를 통하여 산업화를 이루었고 세계 10위권이라는 경제국으로 성장하게 된 것입니다.
셋째는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서독에 가서 차관을 얻어왔습니다. 당시 8,000여명의 광부와 1만여명의 간호사들이 외화벌이를 위해 서독에 있었습니다. 박대통령을 만나자 너무 기쁘고 타국살이 설움이 만감이 교차되어 대통령을 부둥켜 안고 눈물을 터뜨리고 같이 울었습니다. 순간 그곳은 온통 울음바다가 되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근간을 이룬 어르신들을 섬길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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