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조기현 시인 | | ⓒ 경북연합일보 | |
근자에 경주의 문인 몇 분과 함께 [국립한국문학관] 유치에 관하여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결론은 경주시가 국립한국문학관의 유치지역으로서 역사적 명분으로 보거나 문화도시로서의 여건으로 보거나 최적지라는 것과, 아울러 그럼에도 [국립한국문학관] 설립에 대한 시민적 인식과 지지가 부족하고 시 차원의 유치 활동이 미진하다는 데 현실적인 문제도 함께 짚었습니다. 이에 그간의 논의를 정리하여 경주의 유치 활동을 촉진하는 데 일조를 하고자 합니다.
'한류(韓流)'의 가치가 범지구촌에서 높아지고 소설가 한강의 맨부커 상(償) 수상으로 세계인들의 한국문학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국립한국문학관]설립 사업이 올해부터 본격화 하고 있습니다. [국립한국문학관]은 한국의 문학을 대표하는 기관으로서, 앞으로 한국문학을 전 세계에 보급하는 교두보가 될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이 기관을 유치한 지역은 정신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큰 재보를 얻게 될 것으로 봅니다.
이런 점이 유치 경쟁을 과열되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25일 접수가 마감될 예정인데 20일 현재 [국립한국문학관]의 유치에 나선 도시들은 서울, 대구, 인천, 충청, 경기, 강원 등 모두 십여 개 지차체입니다. 우리나라의 광역지자체들이 후원하는 가운데, 이들 도시들이 앞으로 각자 총력전을 전개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다 함께 생각해야 할 점은 '문화'의 속성입니다. 문화의 속성을 생각할 때 [국립한국문학관]의 최적지가 어떠한 곳일지를 판단할 수 있게 됩니다.
무릇 문화가 발전하는 큰 힘은 '뿌리'에서 나옵니다. 깊은 뿌리는 가뭄에도 솟아나는 원천(原泉)에 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문화의 공간은 항상 열려있어야 합니다. '열림'이 없이는 소통과 화합과 승화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역으로 문화를 죽이는 것은 바로 이와 반대되는 작용입니다. 깊은 뿌리 곧 정통성을 부정하고 열린 문을 닫아버리는 일입니다. 어느 문화이든 일시적 이해를 내세워 패권주의와 이기주의에 휩쓸리게 된다면, 특정한 세력의 독단으로 소통과 화합의 여지를 닫아버린다면, 그 문화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문화의 속성이 '뿌리'와 '열림'을 생명으로 지닌 것을 인식한다면, [국립한국문학관]도 마땅히 그 소명을 감당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입지를 선정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다면 장차 큰 후회를 남기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 유치 과정에서 지역 간 힘겨루기나 졸속으로 결정되어 갈등이 불거진다면 그 또한 한국문학의 실패요 손실이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경주보다 앞서 일찌감치 유치에 나선 도시들은 대체로 <도시의 위상과 세력>, <한국문학사 기여도>를 앞세워 유치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이 대동소이하며 정당성도 부족해 보입니다. 이런 가운데 유력 도시들이 정치적인 힘에 기댄다면 더더욱 공정성의 위기가 초래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 경쟁은 국민적 비판거리가 되고 말 것이며, 이들 중 어느 도시로 최종 결정된다 하더라도 다른 도시들이 승복하지 못하는 국면을 만들게 될 것입니다.
[국립한국문학관]의 설립은 우리 한국인의 화합과 한국문학의 미래를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지금도 한국인은 역사의 고난을 넘어가는 힘겨운 과정에 있습니다. 오늘의 한국문학이 거둔 성과들은 그 과정에서 피워낸 꽃들입니다. 통일의 시대를 열어가야 할 우리 한국인은 단절과 폐쇄를 넘어서 소통과 화합과 승화를 이루어 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함께 통일의 길을 넘어서 한국문학을 꽃피워 갈 수 있다면 우리는 세계의 문화를 선도하게도 될 것입니다. 따라서 [국립한국문학관]은 지역 간 갈등을 지양하고 한국인과 한국문학이 안은 시대적 과제 수행을 원활하게 할 지역에 유치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경주가 [국립한국문학관] 설립의 최적지라는 인식이 범국민적인 운동과 함께 확산되기를 기대하며, 유치 정당성을 제시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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