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선석열 문학박사 | | ⓒ 경북연합일보 | |
한국사에 있어서 지방제도는 고대의 중앙집권국가가 등장하면서 실시되었다. 신라는 4세기 전후에 진한의 12국이 복속 통합되어 공납이나 병력 동원 등의 의무를 수행하는 간접지배를 하였다. 마립간시대부터 지방을 직접 지배하기 위해 관리와 군대를 파견하기 시작하였다. 505년 지증왕 때에 이르러 지방제도를 본격적으로 시행하였다. 삼국을 통일한 이후 신라는 지방을 9주 5소경으로 나누고 그 아래 450여개의 군과 현을 두었다. 그 외에도 향(鄕) 성(成) 부곡(部曲) 등을 두었다. 이러한 지방편제의 기준은 전정(田丁)이라 부르는데 각 고을을 주·군·현의 크기를 결정하는 잣대였다. 전정은 토지 규모와 인구수를 산정하는 것이었다. 각 고을에 토지 결수가 어느 정도인가와 성인 남녀의 인구수가 얼마인가를 계산하여 주·군·현으로 편제하였다.
전정의 규모가 적어 현으로 삼기에 부족한 고을의 경우에는 향으로 삼아 향령을 파견하여 국가 정책을 반영하였다. 그 외에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특수한 기술을 가진 집단이 사는 곳은 성이라 편제하여 보호하고 반란 등으로 감시가 필요한 곳은 부곡으로 삼았다. 특히 5소경은 가야를 비롯하여 고구려나 백제의 중요한 문화지역이면서 국내 교통의 요지인 고을에 두었다. 5소경을 설치한 목적의 이면에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왕경(王京) 즉 서울의 인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행한 수도권 인구분산책의 일환이었다.
5소경에는 원래의 지방문화 중심지이면서 서울에서 이주해온 신라인의 문화가 융합되어 서울과 지방의 문화적 격차를 해소하였다. 이로써 미래의 비전을 가질 수 있는 새로운 통일신라 문화가 꽃피우게 되었던 것이다. 9주 5소경은 가야를 포함한 원래 신라지역에 3개 주와 왕경 그리고 금관소경을 두었는데 옛 고구려·백제 지역에도 각각 3개주와 2소경을 두어 차별없이 균등하게 시행하였던 것이다. 주·군·현 아래에는 여러 행정촌이 있어 촌주를 중심으로 지방자치를 행하면서 지방관의 행정에 자문을 하였다. 이와 같은 신라의 지방제도는 고려시대 조선시대에도 발전적으로 계승되어 한국지방사의 전통을 잇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도 5소경과 비슷한 6개의 광역시가 있고 8개의 도와 시·군이 있다. 지방자치제가 시행되고 있는 현재에는 광역자치단체와 그 아래 시·군의 기초자치단체가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지방행정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으며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해결될 전망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먼저 지적해야 할 것은 기초행정구역인 시·군의 편제 기준 문제이다. 한국역사에서 보면 전정 즉 토지 규모와 인구수를 산정하는 것이었으나 현재의 기준은 주로 인구를 기준으로 하여 산정하고 있다.
1970년대를 전후하여 한강의 기적이라 하는 경제개발정책으로 서울은 물론이고 그 주변의 고을들에 인구가 집중하여 오늘의 수도권을 이루게 되었다.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은 물론이어서 인구가 현격하게 줄어든 농촌지역은 몇 개의 군이 하나의 선거구로 변해버렸다. 반면에 수도권뿐만 아니라 다른 광역시의 경우 세분화된 선거구가 양산되어 민의를 적극 반영하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인 곳이 인구가 적은 농촌지역이다. 국가에서 배정하는 지방예산도 인구비례로 되어버려 수도권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농촌지역은 갈수록 피폐해 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최근에 수도권 가운데 일부 기초단체가 지방재정을 축소시켰다고 공동성명을 발표한 사태는 비수도권에서 보면 아이러니하게 비춰질 수도 있다.
과거 한국 전통의 지방편제 기준을 따른다면 인구도 중요하겠지만 면적도 중요하게 인식되어야 한다. 인구가 매우 적은 농촌은 별다른 시설이 없이 방치된 황량한 공간이 아니다. 인간이 살 수 있는 여유공간으로서 미래를 위해 환경보전과 미래산업의 터전으로서 새롭게 보아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한 국가 재정의 편성 기준도 변화가 있어야 하며 그와 같은 측면에 대한 장기적 전망의 투자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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