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손일봉 화백 | | ⓒ 경북연합일보 | |
1983년 서울 신세계화랑에서 전시회를 하였다. 그 때 나는 느낌을 그리는 사실에 대해서 깨달은 바가 있었다. 개나리 그림이 한 점 있었다. 아마도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풍경>이라는 제호의 그림이 아닌가 싶다. 가까이서 보면 노란 물감의 덩어리처럼 보일뿐인데 한 발 두 발 뒤로 물러나면서 바라보니까 개나리는 점차 섬세하게 살아나면서 이야기를 속삭였다. 초가집이 보이고 장독대가 보이고 노란 병아리와 강아지도 보였다. 나는 끝내 눈물을 쏟아내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한 점은 현재 대구시립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무제>란 제호의 절벽 아래 파도치는 바다 풍경이다. 나는 그림을 감상해가다가 <무제> 앞에서 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파도소리가 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귀를 기우려 보면 파도소리는 보다 선명하게 들려왔다. 화가의 느낌과 관람객의 느낌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손동호 화백에게 "형님에게도 파도소리가 들립니까?"하고 물어보니 손동호 화백은 깜짝 놀라면서 "자네, 참 대단하다. 아무도 못 듣는 파도소리를 듣다니…" 손동호 화백은 자기도 듣는다면서 전시된 그림 중에서는 최고의 그림인 것 같다고 했다.
손일봉 화백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로 끝맺고 필자가 애초에 관심을 가졌던 손일봉 화백의 미술적 재능이 누구에게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손일봉 화백은 자식을 셋 두었다. 큰딸은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막내딸은 평생 아버지를 모셨다. 둘째로 태어난 아들이 손동호 화백이다. 손동호 화백은 홍대를 다녔으니까 본격적으로 화가로서의 수업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필자가 여기서 손동호 화백이라 호칭을 하지만 실지로 화가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활동을 한 적은 없다. 그러나 필자는 화백이라는 호칭을 붙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손동호 화백의 그림을 본 사람은 몇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 손일봉 화백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정도의 그림을 그렸다.
어쩌다가 손일봉 화백은 경주의 아들 집에 와서 아들의 그림을 보고 칭찬해줄 때가 가끔 있었다. 그런 날이면 손동호 화백은 필자와 통음을 했다. 아버지의 칭찬을 받고 그렇게 좋아하든 그는 끝내 그림을 그만 두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은 아버지의 손바닥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는 사람마다 손일봉 화백의 그림과 똑같다는 칭찬을 해주었다. 그 칭찬이 그를 비참하게 했다. 그는 평생 아버지의 그림을 흉내 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림에는 소질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손동호 화백은 인생에서 한 번도 꽃피어보지 못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아 간암으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필자는 천재 손일봉 화백의 재능을 이을 후대가 없다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트경주 2016>에서 한 화가를 발견하고 그것은 필자의 오판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경주 보문의 화백컨벤션센터 전시장에 들어서서 오른 쪽으로 돌면서 그림을 감상해나갔다. 오른 쪽 코너에 이르자 6인 기획전 부스가 있었다. 두 번째 부스에 연필 소묘 작품이 전시 되어 있었다. 이런 화려한 전시회에 연필 소묘 작품이라니 엉뚱하다는 생각을 하고 작가의 이름을 찾아보니 손수민이었다. 손일봉 화백의 종손녀이자 집 사람의 조카였다. 화랑고등학교 교감으로 재직하고 있는 둘째 처남의 장녀였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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