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일본 히로시마 방문은 세계사에 나름의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무기를 사용했던 국가의 대통령이 원자폭탄 피폭 현장을 찾아 '핵무기 없는 세상'을 주창하는 것은 책임 있는 지도자의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전범국인 일본의 철저한 반성과 사죄가 없는 상황에서 이번 방문을 지켜보는 전쟁 피해국인 한국 국민의 심정은 착잡하다. 자칫 일본에 원폭 피해국 이미지만 극대화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역사 수정주의가 더욱 노골화하지 않을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이달 27일 아베 일본 총리와 함께 히로시마를 방문할 예정이다. 미 현직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방문하는 건 미국이 원폭 공격을 한 1945년 이후 처음이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찾은 적이 있지만 대통령 임기를 마친 뒤였다. 백악관은 "'핵무기 없는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추구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지속적인 약속을 강조하기 위한 방문"이라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달 26∼27일 일본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에 참석하면서 히로시마를 찾을 것이란 전망이 그간 제기돼 왔고, 사전 정지작업 차원에서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지난달 11일 히로시마 평화공원을 찾은 바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의 원폭 투하 '사과'로 비칠 수 있다는 국내외의 우려에도 장고 끝에 히로시마행을 결정한 것은 미·일 동맹 강화 등 양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일 것이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임기 내 외교적 업적을 남기려는 오바마의 생각과 전쟁 피해국으로서의 이미지를 부각하려는 일본 아베 정권의 외교전략이 부합한 것이다.
이번 방문이 결코 일본의 전쟁범죄에 면죄부를 주는 결과가 돼서는 안 된다. 일본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돼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된 일은 너무나 안타까운 비극이다. 하지만 일제의 침략과 전쟁범죄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은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주변국에 일본은 진정성 있는 사죄를 하지 않았다. 이런데도 이번 방문으로 일본이 마치 면죄부라도 받은 것처럼 여긴다면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과거사는 결코 지워지거나 덮어지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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