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문무학 문학박사 | | ⓒ 경북연합일보 | |
'가정(家庭)'은 '가족(家族)'으로 구성되고, 가족은 가정을 구성한다. 5월은 가족의 달이 아닌 가정의 달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두 낱말을 풀이해 보면 알 수 있다. '가족'은 부부와 같이 혼인으로 맺어지거나 부모. 자식과 같이 혈연으로 이루어지는 집단, 또는 그 구성원'으로 풀이되며 법적으로는 동일한 호적 내에 있는 친족이다. '가정'은 한 가족이 생활하는 집, 가까운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생활 동동체다.
가족과 가정을 해석하는 글에 가족의 해석에는 생활이란 말이 없고, 가정의 해석에는 생활이란 말이 해석의 중심에 온다. 그것이 다른 것이다. 가족을 구성하는 길은 전통적으로는 혼인, 부모 자식이라는 관계밖에 없지만 지금은 피가 섞이지 않아도 가족이 구성되는데 그것은 입양 등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 가족은 튼튼한 관계라 저절로 존재가 가능하지만 가정은 능동적이라야 생활이 이루어질 수 있다.
가정을 책임지는 사람은 혈연관계에 따라 할아버지거나 아버지였다. 가정의 형태가 다양해져 그렇게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지금도 대부분 그렇다. 그래서 가족은 가장을 중심으로 이른바 생활을 꾸려나가게 된다. 아버지의 위치는 그래서 대단하다. 밖에 나가 있으면 온 가족들이 가장의 안부를 걱정한다. 가장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가정생활이 어려워지기 때문이기도 하고, 정으로 맺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으로부터 대체로 3천여 년 전에 쓴 시경(詩經)에 실린 작품 중에서 가족과 가정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큰 작품이 있어 가정의 달에 함께 읽고 싶다. 1982년 평범사 본, 하정옥 교수 번역이다.
'여수의 방축' "저 여수의 방축을 따라/ 작은 나뭇가지를 벤다./ 당신을 뵙지 못해/ 그리움은 아침의 배고픔 같아라. // 저 여수의 방축을 따라/ 새로 돋은 나뭇가지를 벤다./ 당신을 만나 뵈니/ 나를 버리지 않으셨어라.// 방어는 꼬리가 붉어졌으나/ 왕실은 타는 듯 어지러워도/ 부모님이 가까이에 계셔라" 행역(行役) 나간 남편이 돌아온 것을 맞이하여 기뻐하는 여인의 시다. 첫 장에서는 남편을 보내고 애타게 그리던 심정을, 2장에서는 그 이듬해 남편이 돌아와 서로 만나서 옛정에 변함이 없음을 기꺼워하는 심정을, 3장에서는 왕실의 일도 급하지만 부모가 계신 집을 소홀히 할 수 없음을 말하여 자기가 남편을 기다리는 것이 남녀의 애정에서만이 아님을 은연중에 나타내고, 시국이 어지러워 아무것도 돌볼 수 없게 된 이 마당에 부모를 가까이 모시고 가족과 생사를 같이하고자 다시는 집을 떠나지 말라는 뜻을 담은 것이다.
이 시는 남편을 그리는 한 아낙네의 시인데 참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읽는 이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다. 특히 그리움이 아침의 배고픔 같다고 한 것은 그야말로 절창이다. 그리움을 이토록 간절하게, 절절하게, 또 적절하게 드러낼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절창이 나온 배경은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족, 가족 하니까 이내 떠오르는 말이 남북 이산가족이다. 이산가족, 그들의 아픔은 어쩌면 아침의 배고픔보다 훨씬 더 할 것이다. 남북이 아무리 이념 대립을 한다 해도 이 가족 그리움은 달래 줘야 하는데 안타까울 뿐이다.
가정의 소중함, 남편을 그리는 마음,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들이 아름답게 표현된 시를 읽으면 자연스레 가족의 얼굴이 떠오른다. 가족 간의 사랑은 세월도 변하게 할 수는 없는 듯하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고금이 다르지 않다. 그 사랑이 이웃으로 번지고 사회로 번지고 나라로 세계로 뻗어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족 사랑이 결국은 인류를 사랑하는 길의 맨 첫걸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5월 내 가족의 이름을 불러 신록에 얹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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