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김종현 연합통신 논설위원 | | ⓒ 경북연합일보 | |
국책은행의 자본확충을 위한 한국은행의 '양적완화'를 놓고 논란이 무성하다. 당사자인 정부와 한국은행은 물론 정치권과 언론, 학계가 나서 타당성 논쟁을 벌이고 있다. 한국은행은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국책은행 부실 털이에 발권력을 동원하는 것은 환란과 같은 위기 국면에서나 검토할 수 있는 것으로 사회적 합의나 국민적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는 사안의 시급성과 재정건전성 문제 등을 감안할 때 한은의 출자가 바람직하다고 밀어붙이고 있다.
4.13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하면서 선대위원장인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제안한 포괄적 양적완화는 흐지부지 됐다. 한은의 역할이 국책은행 자본금 확충을 위한 출자로 축소되더니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쪽으로 흐르고 있다. 정부에 협조적인 자세를 보이던 이주열 한은 총재는 중앙은행의 책임 문제를 의식해 출자가 아닌 '대출'이 적합하다고 제안했다. 다수당인 야권도 중앙은행의 출자에 반대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정부·여당의 '전략 실패'라고 할 수 있다. 여권은 총선 표 모으기에 도움이 되고 결코 패배하지 않으리라 믿고 한국판 양적완화를 공약으로 제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공약이 먹혔는지는 의문이다. 양적완화라는 용어가 지닌 부정적 뉘앙스에 대한 여론의 우려를 가볍게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타초경사(打草驚蛇: 풀을 건드려 뱀을 놀라게 하다)였던 셈이다.
일반국민 중엔 양적완화란 무분별하게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내는 것이고, 이는 인플레이션을 불러 민생을 더 어렵게 하고 빈부격차를 확대시킬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야당들도 같은 생각이다.
작년까지도 효과가 있는 것 같았던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의 무지막지한 양적완화가 올들어 약발을 잃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이런 생각을 뒷받침한 것으로 보인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4조5천억 달러, 유럽연합은 8천800억 유로, 일본은 200조 엔 이상을 풀었지만 미국만 초기에 어느 정도 재미를 봤을 뿐 유럽연합과 일본은 약효를 입증하지 못했다. 유럽연합은 여전히 위기의 터널 속에 있고, 일본은 양적완화의 최대 '치적'이라는 엔저가 올들어 엔고로 반전하면서 통화정책의 신뢰성을 의심받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무분별한 양적완화는 파탄을 불렀다. 중앙은행 독립 투쟁의 선봉인 한은 노조는 이 점을 자극적으로 파고 들었다. 한은 노조는 "재정적자가 불량식품이라면 발권력 동원은 그 끝이 반드시 죽음에 이르는 마약"이라거나 "교초를 남발한 몽골, 당백전을 발행한 조선, 돈을 찍어 1차 대전 배상금을 내었던 독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과론적인 얘기이긴 하지만 양적완화를 여권이 선거 공약으로 꺼내지 말고 처음부터 기업구조조정을 위한 국책은행의 자본 확충이 시급하고 이 과정에서 한국은행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차분하게 접근했다면 문제가 이렇게까지 꼬이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국책은행의 자본 확충에 얼마가 필요할지는 두고 봐야 하지만 결국은 선택의 문제다. 구조조정 자금을 재정에서 염출한다면 국채를 발행해야 하기에 부담이 후세로 이월될 것이다. 한국은행의 발권력으로 해결한다면 이는 당장 국민의 부담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으로든 국민 혈세라는 건 마찬가지다. 어떤 형태가 국민의 짐을 최소화하고 국가적으로 이익이며, 효과적으로 기업부실을 털어낼 수 있는지를 판단해 최선책을 찾아야 한다. 야당도 기업 구조조정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는만큼 합리적인 방안이라면 거부할 명분이 없을 것이다.
20년 전 환란 때 뼈저리게 경험했듯 구조조정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기업의 부실은 청소가 늦어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국민부담은 갈수록 커질 것이다. 한국은행도 정부와 함께 금융 안정에 책임이 있고, 필요하다면 발권력 활용을 주저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통화정책은 한은 주장대로 고도의 전문적 판단하에 이뤄져야 하며, 정치나 정부에 휘둘리지 않는 독립성이 중요하다. 여론에 좌우돼서도 안 될 것이다. 그렇다면 국책은행 자본 확충 참여를 놓고 '사회적 합의'니 '국민적 공감대' 운운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