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현경숙 연합통신 논설위원 | | ⓒ 경북연합일보 | |
몇 년 전 '향수'(香水, 부제: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라는 영화가 상영됐다. 엽기적이고 기묘한 분위기의 스릴러 영화로 기억하는 독자가 많을 것 같다.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쓴 동명의 원작은 스릴러나 공포 소설이 아니다. 상징적이고, 우화적인 이 소설은 읽는 이에 따라서 작품 해석이 다를 수 있을 텐데 필자에게는 심오한 사회 철학과 인간애를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주인공 '그르누이'는 체취가 없다. 단지 몸에서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태어나자마자 '신의 저주를 받은 아기'로 배척받고, 뭇 인간으로부터 차별과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그르누이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예민한 코를 가졌다. 그는 생존하기 위해 하찮은 진드기처럼 납작 엎드려 숨죽인 채 살아가지만 젊은 여인의 몸에서 채취한 냄새로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향기, 즉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향수를 만들어낸다. 그르누이가 겪는 고난은 필설로 헤아릴 수 없다. 모든 인간은 그를 만나는 첫 순간부터 피하고, 저주한다. 이 때문에 그는 불과 서너 살 때부터 남들이 원치 않는 험한 음식을 먹고, 춥고 습기 찬 곳에서 자고, 아무도 하지 않는 힘든 일을 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인간들의 위협과 냉대에 지친 그는 허리를 펼 수도 없는 작고 좁은 동굴에서 몇 년을 혼자 지내기도 한다.
그르누이는 체취가 없다는 이유로 태어날 때부터 유년기, 청년기인 죽을 때까지 상상하기 힘든 고초와 박해를 겪는다. 쥐스킨트가 그르누이와 타인의 차이로 설정한 체취 없음은 어찌 보면 사소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런 해가 되지 않아, 사회적으로 볼 때 무의미하다고도 할 수 있다. '향수'는 인간의 작은 차이에 대한 사람들과 사회의 차별이 얼마나 뿌리 깊고 잔인한지 보여준다. 그러한 차별은 민주주의와 인권에 위배됨을 독자는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깨닫게 된다. 쥐스킨트의 견해로 보자면 능력이나 외모가 조금 낫거나 모자란다는 이유로 사람을 미워하거나 냉대하는 것은 비민주적이다.
사람 사이 다름 중의 하나가 장애일 것이다. 얼마 전 우리는 장애인의 날을 지냈다. 1981년부터 36년 동안 매년 장애인의 날 행사를 열었지만,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복지는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한국은 현대사에서 드물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자신의 힘으로 성공한 사례로 칭송받는다. 아시아만 봐도 틀린 말이 아니다. 선진국인 일본이 민주 국가가 된 데는 2차 대전 후 미국 군정 덕이 컸다. 미국과 어깨를 겨눌 정도로 성장한 중국은 아직도 민주주의 실현이 요원하며, 동남아시아 맹주를 자처하는 인도네시아는 독재 종식에 성공했으나 산업화를 이루기 위해 갈 길이 멀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중심 국가인 태국에서는 군부 쿠데타가 몇 년 주기로 반복되고 있으며, 차세대 중국으로 주목받는 대국 인도는 계급사회의 굴레를 벗지 못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아시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이지만 시민들이 껌 씹는 데도 국가가 간섭한다. 한국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이룬 것은 민주주의와 인간 다운 삶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열정이 아직 인권, 사람에 대한 배려에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장애인들이 복지 혜택이나 배려는 고사하고 교육조차 받기 어려운 현실에서 잘 드러난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을 자랑하는 한국의 최고 도시 서울의 시민들은 장애인들이 다닐 수 있는 학교를 짓지 못하게 한다. 집값이 내려가고, 장애인들과 가까이하기 싫다는 것이다.
서울은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 부족 현상이 심한데 2003년 이후 특수학교를 추가로 설립하지 못했다. 서울에서 특수학교가 없는 자치구가 양천, 금천, 영등포, 용산, 성동, 동대문, 중랑, 중구 등 8곳에 이른다. 2014년 기준 장애인 평균학력은 초등학교 졸업 이하가 41.4%에 달한다. 한국의 장애인 빈곤율은 3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22%의 약 1.6배다. 장애인복지 지출은 국내총생산(GDP)의 0.49%에 불과해 OECD 평균 2.19%에 한참 못 미친다. 장애인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38%로 전체 인구의 경제활동 참가율 63%와 비교할 때 반 정도다.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조차 장애인 채용을 꺼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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