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최철준 대구경북지방병무청장 | | ⓒ 경북연합일보 | |
1989년 11월 9일 도끼와 해머로 베를린 장벽을 허물고 동독과 서독 시민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환호하는 모습이 전 세계로 생중계 되던 날, 우리나라 국민들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저들이 기쁨이 머지않아 우리들의 기쁨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또 그렇게 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했었다.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독일이 통일되는 감격적인 역사의 현장이 TV로 방송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7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오늘날 통일을 이룬 독일은 통일에 따른 빈부격차 등의 문제들을 극복하고 눈부신 경제 발전을 통해 유로 회원국을 이끌고 있다.
우리에겐 아직 꿈같은 얘기로만 들려오는 통일, 한반도의 통일은 어디쯤 오고 있으며 언제쯤 분단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까? 반세기 동안 미국과 나란히 세계의 패권을 지배하였던 소련의 공산주의가 무너졌고 중국마저 용도 폐기한 사회주의를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독재와 공포정치 그리고 핵폭탄으로 연명하려고 하는 저 북녘 땅 에서는 언제쯤 평화의 합창이 들려올 수 있을까?
그런데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는 과정에 우연한 해프닝 하나가 큰 영향을 끼쳤다면 믿을 수 있을까?
당시 동독은 여권발급 기간을 단축한다는 정도의 특별할 것 없는 서독으로의 여행 자유화를 결정했다. 그러나 기자회견 과정에서 동독정부의 선전담당 비서였던 권터 샤보브스키는 전 세계로 중계되는 여행자유화정책 발표회견장에서 한명의 기자가 "여행자유화가 언제부터 시작되느냐"라는 질문에 "지금 바로"라고 말하는 실수를 하게 되고 이 순간 흥분한 동독인들은 서베를린으로 가기위해 베를린 장벽으로 달려가 상부명령을 전달받지 못한 군인들을 압박했고 장벽은 열리기 시작했다.
물론 그동안 '프라하의 봄'을 비롯한 동구권 국가들의 수많은 시위와 공산주의에 대한 저항, 폴란드를 시작으로 한 동유럽 국가들의 체제변화, 헝가리와 오스트리아의 국경장벽 붕괴, 19년간 집권한 호네커 의장을 퇴진시킨 평화시위 등 수많은 노력에 의하여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음에 재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동독 공산당 대변인의 말실수와 외신 기자의 과잉 해석이 서독과의 국경을 전면 개방한다는 쪽으로 잘못 발표됨으로 뜻하지 않게 베를린 장벽이 순식간에 붕괴되는 도화선이 되었다는 점이다. 때론 전환점이 되는 큰 역사적 사건은 논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난 4월 8일 중국 저장성(浙江省) 닝보(寧波)에 있는 북한이 경영하는 류경(柳京)식당 종업원 13명이 집단으로 탈북을 하여 국내에 입국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해마다 많은 수(연간 1,500~2,500여명)의 북한 주민이 탈북해오는 일상화 된 현실과 특히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때문에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들이 탈북을 하게 된 경위와 이들의 신분이 유경호텔에 소속된 당과 행정기관의 고위 간부 자녀들인 점을 감안하면 매우 주목할 만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의 핵 위협이 강도를 더해가고 있어 국가안보가 심각하게 위협을 받고 있으나 북한의 이러한 강한 위협은 그만큼 그들의 체재가 흔들리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위기라고 부르는 지금은 통일로 가는 기회의 문이 아닐까? 흔히들 '위기는 기회'라고 한다. 우리는 남북통일에 관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아야 하고 남북관계가 예측하지 못한 방식과 상황에서 통일이 다가 올 수 있음을 우리는 항상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 병무청에서도 다가올 통일에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통일 이후 이북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한 병역의무부과 제도를 사전에 마련해놓는 것은 말할 것도 없으며 지역, 위치, 인구분포를 고려한 병무행정 수행 방안도 미리 구축 해놓아야만 한다. 통일 이후에도 병무행정의 연속성과 신속함이 유지될 때 통일 대한민국의 안보도 굳건해질 수 있다. 통일 독일의 매개체가 된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우연함이 만든 역사적 사건'으로 보기 보다는 '필연이 만든 우연의 산물'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베를린 장벽 붕괴의 원인이 되었던 여행자유화 조치는 결국 동독 국민들의 민주화, 자유에 대한 요구와 열망으로 인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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