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이병로 연합통신 논설위원 | | ⓒ 경북연합일보 | |
4.13 총선에서 경제살리기는 주된 의제로 부각되지 못했다. 경제심판론은 종속 변수였고 정권심판론이 결과적으로 압도적 힘을 발휘했다. 하지만 그걸로 끝난 건 아니다. 총선 과정에서 경제문제는 막대한 에너지를 흡수하고 폭풍으로 휘몰아칠 채비를 했다. 원내 1당이 된 더불어민주당과 3당인 국민의당도, 여당인 새누리당도 20대 국회는 민생문제에 집중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런 다짐이 얼마나 실행에 옮겨질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기는 하지만, 정치권이 쉽게 약속을 팽개치기도 어렵다. 불과 1년 반 뒤로 예정된 대통령선거가 약속위반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와 '경제 활성화'의 진짜 승부가 이제부터 시작된다고 보는 이유다. 총선을 앞두고 김종인표 '경제민주화'에 맞서 새누리당은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을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했다. 강봉균 선거대책위원장은 경제민주화가 '포퓰리즘'이라고 맹공을 퍼붓는 것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강 전 장관이 보기에 경제민주화는 대기업 투자를 위축시키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지 못한다. 자연스럽게 경제활성화를 위해서는 대기업 투자를 늘리는 게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연장 선상에서 법인세 인상을 탐탁지 않게 보고, 인상할 경우도 기업의 투자를 저해하지 않는 범위로 국한해야 한다고 본다. '밀물은 모든 배를 띄운다'는 성장 원칙에 충실하다.
성장이 만능의 약이며, 소위 낙수효과를 통해 과실은 나뉜다고 보는 보수적 시각의 전형이다. 경제민주화는 이와 반대편에 서 있다. 기업 정책은 재벌 특혜를 줄이고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데 정책초점을 맞춘다. 고용도 중소기업의 성장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복지정책은 포퓰리즘을 두려워하지 말고 보편적으로 추진해야 하며, 재원조달을 위해 법인세를 원상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구조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경제민주화만이 문제 해결책이라 게 요점이다.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119조2항)는 헌법적 근거를 원천적 정당성으로 보유한다. 경제민주화라는 이슈를 선점한 것은 역설적으로 새누리당이었다. 지난 대선에서 여당은 경제민주화를 선창했고 큰 성공을 거뒀다. 애초에 기질적으로 몸에 맞지 않는 옷 같은 것이었던 경제민주화의 운명은 이때 이미 예정돼 있었다. '경제민주화'는 지난 3년여 동안 사실상 휴지모드에 들어갔고 어찌 보면 그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정체성에 혼란을 주는 구호였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큰 실패를 맛봤으니 경제민주화를 다시 꺼내 들 공산이 있을까. 그건 정체성 혼란을 가중하는 일이 될 뿐이다. 역시 보수적 가치에 부합하는 건 경제활성화다. 강봉균 전 장관의 말마따나 '경제민주화'는 보완적 개념일 때 어울린다. 총선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야당 수뇌부에서 '제3의 길'을 띄우는 발언이 연이어 나온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가 말한 제3의 길과 얼마나 같은 것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일단은 친기업적 경제정책의 적극 수용으로 비친다.
더민주로서는 중도 지지층의 외연을 확장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도덕적 복합성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 진보와 보수 세력 모두가 상대 진영의 이념을 일정 정도는 수용한다는 가치 복합성이 목표점이다. 하지만 정당의 정책은 태생적 가치 체계와 연동돼야 하기 때문에 지나친 잡탕화는 경계해야 한다. 너무 반대쪽으로 멀리 이동한 정책은 정치 술수에 불과하다. 그런 정책은 구호를 넘어서지 못하고, 유권자의 마음을 훔친 뒤에는 창고로 돌아갈 숙명이다. 약속 위반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유권자들의 환멸이며, 지지층의 이탈이고, 가치와 연결된 정책의 좌초일 뿐이다. '가치와 연결된 정책' '집행 가능한 정책'이 외연 확장보다 진실하고 의미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