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박정웅 행정학박사 | | ⓒ 경북연합일보 | |
경주의 서악은 높이 390M 남짓한 높지 않은 산이지만 서라벌의 서쪽을 지키는 성산(聖山)으로 경주 오악중의 하나로, 경주를 한 눈에 굽어보는 산이다. 선도산은 신라가 건국되기 전 북방에서 온 사소(沙蘇)공주의 이야기에서 "솔개가 머무는 곳에 집을 짓고 살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솔개가 앉는 선도산에 집을 짓고 살았는데 사소공주는 신라의 서쪽을 지키는 지신(地神)으로 선도산에 계시는 신이라 하여 선도성모(仙桃聖母)라 부르기도 한다. 삼국유사에는 선도성모가 신라 시조 왕 박혁거세 거서간의 어머니가 되시는 분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에 오늘날도 음력 삼월 초열흘에 선도산 꼭대기의 성모사(聖母祠)에서 제를 올리고 있다.
선도산 마애삼존불은 본존불의 높이가 6.85M, 협시보살상이 오른쪽 4.6M, 왼쪽이 4.55M의 대형 석불의 위용이 산 아래 펼쳐지는 경주를 수호하는 수문장처럼 버티고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보물 62호인 본존불은 경주에서 가장 큰 석불이지만 파손이 심하여 그 원형을 가늠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불상의 훼손은 안산암 석질로 마그마상태였던 것이 오랜 세월동안 결정화되어 파손된 것이다. 따라서 석불의 본모습은 물론 외형의 훼손으로 그 모습을 분별하기가 어렵다. 특히 얼굴부분이 심하게 파괴되어 그 매무새마저도 균열이 생겼다. 다만 반쯤 남은 코와 입술부분 그리고 버티고 선 풍채는 경주평야를 굳건하게 지키는 당당한 기품에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는 수호신의 기개를 보는 듯하다.
협시보살상 역시 심하게 파손되었지만 그래도 두 협시보살의 모습은 길고 시원한 눈매와 웃음 짓는 얼굴 모습이 그대로 보여 주어 제작 당시의 신라예술의 진면목을 보여 주고 있다. 특히 깊고 시원한 눈매와 웃음을 머금은 입가의 보조개 그리고 갸름한 얼굴곡선과 양 뺨의 부드럽고 복스럽게 보이는 모습에서 신라인의 예술성의 심오함을 실감케 한다. 통일신라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당시의 문화·예술적 우수성과 불교를 통한 국태민안을 예술품으로 표현함은 놀라운 일이다. 특히 불상이 연화문 좌대로 조각되어 통일신라초기로 추정되는 당시 정교(政敎)의 불교적 정신세계와 수준 높은 작품의 예술성을 오늘날에도 통일신라 초기의 신라문화의 참모습을 보는 것이 감격스럽다.
어느 시대든 시대상에 비추는 역사적 상흔은 그 시대의 삶을 재조명하고 미래를 살아가는 혼의 상징으로 각인됨이 곧 시대적 삶의 문화를 재조명하는 척도가 아닐까? 그래서 오늘날 그 통일 신라적 유물을 그냥 국가보물만으로 지정한 것으로 가치를 가늠하고 있지만 예술적 문화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지혜가 요구되는 마애삼존불상의 가치를 다시 짚어 보아야 할 것이다. 모름지기 경주는 신라 천년의 역사가 오롯이 남아 오늘날 재조명되는 조상이 일구어 놓은 수준 높은 문화를 만끽하고 있는 곳이다. 신라문화는 초기에는 한반도 동남방의 진한의 농경문화에서 출발하여 삼국의 문화를 통합한 독자적인 문화로 성화시켜 그 우수성을 현대에도 보여주고 있다.
신라적 문화의 특수성은 초기의 불교문화를 통한 삶의 가치를 제시하는 사회상의 정립으로 미륵상생 신앙을 바탕으로 하여 국태민안의 문화적 가치를 구가한 신라적 독창성을 정립한 표본적인 국가체제의 흔적들은 현세에도 역사적 교훈으로 시사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이와 같은 신라의 문화사적 상흔은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도 문화적 우수성을 각인시켜 현재적 삶의 가치창출의 표본적인 과거사를 바탕으로 미래를 다듬어 내게 하는 신라사적인 역사의 상흔으로서의 선도산 마애삼존불상에서 국태민안의 역사적 교훈을 짚어보는 계기가 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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