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강병찬 문화부차장 | | ⓒ 경북연합일보 | |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는 동서고금 독자들의 심금을 울린다. 사랑을 이루기 위해 바다를 헤치고 국경을 넘어 왔다는 사랑이야기는 전설이 되고 문학이 되고 역사가 된다. 사랑이야기는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인류의 고귀한 유산이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살면서도 사랑에 메마르고, 사랑을 등한시하며, 사랑을 아무렇게나 다룬다. 그 결과 사랑의 열매인 결혼과 출산이 역대 최저를 이어가고 있다. 상대에 대해서는 엄청난 조건을 요구하면서도 자기 자신은 정작 되돌아보지 않는다. 가정의 파탄을 유행처럼 여기며, 작은 구실을 크게 보며, 비뚤어진 사랑관·가족관을 개성 내지 프라이버시라 강변한다. 사회적으로도 파탄을 일반화·일상화하는 보도·판결·드라마가 범람한다.
이러한 역류(逆流)의 시대에 페르시아의 서사시에서 발견된 신라인들의 사랑방정식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역사문헌들이 대개 고려조에 지어졌기에 고대국가인 삼국과 통일신라의 애정 풍속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신라 공주와 페르시아 왕자와의 러브스토리는 모험과 흥미를 넘어 희생과 극복, 순결과 진정으로 인해 불멸의 사랑으로 전해지고 있다. 쿠쉬나메(Kush Nama)에서 신라의 프라랑 공주와 페르시아의 아비틴 왕자는 드라마틱하게 결혼에 성공한다. 당시의 시각으로 도깨비처럼 생긴 이국남에게 공주가 시집가기는 어렵다. 그들이 막대한 재화나 획기적인 기술력이 있었더라도 정말 소설 같은 얘기다.
어느 사회든지 소수인들은 주류가 되기 어렵다. 그래서 그들의 폭넓은 식견과 기술은 사장되기 쉽다. 하지만 합리적인 국가 조직 속에 탁월한 포용력과 진취적인 사고를 가졌던 신라인들은 소수자들의 진심과 재능을 묵살하지 않았다. 신라인들은 이미 처용설화에서 나타났듯이 이국에서 온 외계그룹들의 춤을 지켜보며 함께 즐겼다. 처용이 역병을 물리친다는 전설로 보아 그들의 의술과 화학을 존중했을 것이다. 다시 쿠쉬나메로 돌아가서 신라왕 타이후르는 아비틴의 청혼을 신중하게 받아들이며, 그에게 부마의 자격이 있는 지를 시험해 본다. 30명 공주 중에서 파라랑을 찾는 수수께끼였다. 이는 인간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 보는 눈'을 가졌는지를 확인하는 절차다.
아비틴의 도발적인 청혼도 극적이지만, 신라왕의 지혜로운 사윗감 고르기와 프라랑 공주의 탁월한 결단도 돋보인다. 프라랑에게 전개될 미래는 결코 순탄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남편 아비틴은 언젠가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때는 정반대로 프라랑이 이국인이 된다. 그녀는 알지 못하는 아비틴의 나라에서 외양이 다르고, 관습이 다르고, 종교도 다르며, 무엇보다도 높은 언어 장벽을 뛰어넘어야 한다. 신라에서 누렸던 공주의 신분이 송두리째 빼앗기고, 어쩌면 역도의 가족으로 몰릴 수도 있다. 이러한 끝모를 난관이 그들의 사랑을 더욱 뜨겁게 만들었을까. 이들은 사랑의 결실로 아들 파리둔을 낳았다. 파리둔은 아버지의 나라 페르시아를 되찾는 영웅이 된다. 용기 있는 사랑은 이렇게 영웅을 길러내며, 역사적인 승리를 만들어 낸다. 모든 역경이 끝나고 프라랑은 대제국 페르시아의 황태후가 되지만, 그녀는 그리운 고국, 신라로 돌아올 수 없었다. 사랑은 전진만 허용되는 쌍두마차이며, 미래로만 열려있는 탄탄대로일 뿐이다.
쿠쉬나메는 페르시아의 서사시로 501년~504년, 1108~1111년 사이에 이란의 하킴 이란샨 아불 카이에 의해 쓰인 신화 역사의 일부이다. 필사본에 근거한 시의 중요한 판본은 대영박물관에 소장된 컬렉션(OR 2780)에서 발견돼, 자랄 마티니 교수에 의해 출간됐다. 이 컬렉션에는 다섯 개의 서사시가 있는데 그 중 신라이야기가 상당한 분량으로 들어있다. 학계에서는 쿠쉬나메가 정통 역사서가 아니고 서사시라고 하더라도, 머나먼 페르시아에서 신라라는 나라를 인지하고 그에 관한 이야기를 매우 흥미롭게 남겼다는 점에서 중요한 일로 보고 있다. 더불어 신라의 고분에서 출토되는 페르시아산으로 보이는 부장품들도 국제적 중심국가였던 통일신라의 활발했던 국제 교류의 증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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