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김종현 연합통신 논설위원 | | ⓒ 경북연합일보 | |
20대 총선은 거대한 쓰나미였다. 민심의 분노가 해일로 용솟음치자 천지가 개벽했다. 산이 무너지고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가 되었다. 천하를 품겠다고 나섰던 많은 인걸이 일거에 쓸려나갔다. 이번 총선은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이 먼지 뒤집어쓴 옛 책에 박제된 활자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했다. 하늘의 뜻은 이미 거기 있었으나 흐린 눈들이 알아채지 못했다. 하늘의 그물은 성긴 듯하지만 매우 촘촘했다. 천심이 옳은지 그른지는 모르겠으나 역린을 건드려 금배지를 잃었다면 그 또한 운명이라 할 것이다. 서산마루에 떨어지는 해는 장려하고 아름답지만 선거에 패한 정치인의 퇴장은 쓸쓸하다.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 2항이 화등잔처럼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권력의 주인은 국민인데도 그걸 머슴들이 욕심에 눈이 멀어 자기들끼리 멋대로 나누겠다고 진흙탕 싸움을 하자 유권자들이 격노했다. 이를 언론은 정부·여당의 오만과 독선에 대한 민심의 무서운 심판이라고 해석했다. 공천 파동을 부른 김무성 대표 등 새누리당 지도부와 박근혜 대통령에게 십자포화가 쏟아졌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새누리 총선은 품위를 상실한 사람들이 끌고 간 참사"라고 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권력의 오만과 민주주의의 후퇴에 대한 경고"라고 질타했다. 소탐대실이요 자업자득이었다.
민심이 분출을 기다리며 용암처럼 기저에서 들끓고 있었는데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유권자들은 이미 알고 있었는데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여론조사기관과 정치권, 언론만 모르고 있었던가. 정치인들은 '국민'과 '민심'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런데도 백성의 생각을 전혀 읽지 못했다. 국민을 가슴으로 섬기지 않았다는 걸 만천하에 드러낸 꼴이 됐다.
전문가들은 새누리당의 참패 원인을 공천 파동에서 찾는다. 시대착오적 '옥새' 쟁탈전에 국민의 기가 막힌 건 사실이다. 하지만 좀 더 본질적인 이유는 경제에 있다고 봐야 한다. 경제가 잘 돌아가 콧노래가 나올 정도로 국민이 행복했다면 공천 싸움이 즐거운 코미디로 여겨졌을지 누가 알겠는가. 하지만 백성은 고단하고 아프다. 현 정부는 출범 이후 경제에 나름대로 신경을 썼지만 나아지지 않고 있다. 성장률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고, 청년 일자리 문제는 개선의 기미가 없다. 물가는 내렸다지만 서민의 삶은 궁핍해지고 있다. 여권이 이를 타개할 비전이나 정치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데 국민은 실망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이 틈새를 파고들었다. 모호하긴 하지만 양극화 해소에 초점을 맞춘 더민주당의 경제민주화와 포용적 성장론이 서민의 시선을 끌었다. 새누리당의 성장우선론과 더민주당의 분배론에서도 유권자는 야당의 손을 들었다고 할 수 있다. 국민의당은 벤처기업인 출신인 안철수 대표의 경제 친화적 이미지가 전국적으로 정당 득표율을 올리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여권으로서는 억울한 점이 많을 것이다. 우선 유가 하락과 중국 경제의 부진 등 정부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대외 여건이 치명타였다. 경제활성화 법안에 사사건건 발목을 잡은 야당에 대한 불만도 클 것이다. 하지만 국민은 여권이 핑계나 구실이 아니라 방법을 찾길 원한다. 국내 정치 문제는 상수였고 그걸 타개하는 것도 능력이다.
이제 시선은 내년 말 대선으로 향하고 있다. 오늘의 승리가 내일의 월계관을 보장하지 않는다. 이번에 패했다고 해서 내년에도 고배를 마시라는 법은 없다. 만물이 유전하듯 변화무쌍하고 변덕스러운 것이 정치고 여론이다. 야당들이 여당에 대한 민심의 분노와 일부 지역 정서에 편승해 의석수를 늘렸지만 이젠 수권정당으로서의 진짜 실력을 보여야 한다. 포장지에 싸인 공약의 본체를 내놓고 성능을 검증받아야 한다.
싸우지만 말고 머리를 맞대고 생산적인 국회 운영을 하라는 것이다. 유권자들은 어느 당에도 과반을 주지 않았다. 독주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서로 대화하지 않을 수 없도록 국민의당을 중간에 끼워 판을 새로 짰다. 타협이냐 대결이냐, 선택은 각 정당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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