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이병로 연합통신 논설위원 | | ⓒ 경북연합일보 | |
프랑스 사상가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1831년 현대 민주주의 실험이 한창 성숙 단계에 오른 미국을 돌아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토크빌은 미국 방문 때 얻은 놀라운 경험을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책에 담아내 큰 반응을 끌어냈다. 토크빌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바로 '조건의 일반적 평등'이었다. 그는 일반적인 평등이라는 특징이 미국 사회의 전 과정에 미친 막대한 영향을 해석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한 사회가 번영하는 토대인 공통 신념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여론이 차지하는 위상이 미국만큼 높은 곳이 없다는 게 그의 결론이었다.
"사람들이 평등하고 동일한 조건의 평범한 수준에 더욱 가깝게 접근할수록 개인이나 특정 계급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일은 적어진다. 그 반면에 대중을 신뢰하는 마음은 점점 증가하고 동시에 여론은 세상을 제패하는 여왕처럼 고고해진다… 모두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한 판단 수단을 부여받고 있기 때문에 더 탁월한 진리란 사람의 수가 더 많은 데서 이뤄지리라는 것이 그럴듯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여론이 갖는 힘을 인지한 인물은 그전에도 있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며 제4대 대통령인 제임스 매디슨은 뛰어난 웅변가였다.미국 권리장전의 아버지로도 일컬어지는 매디슨은 여론과 정치를 이렇게 정의했다. "모든 통치는 여론에 기초한다. 이것은 민주주의뿐 아니라 다양한 군주제에서도 현실이다…"
정치 행위의 근거는 여론이라는 사실을 간파한 말이다. 매디슨보다 토크빌이 한 걸음 더 나아간 대목은 민주사회에서 여론은 절대 군주가 된다는 진리를 캐낸 일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토록 독보적 지위를 갖는 여론을 과학적으로 조사하는 방법이 현실화된 것은 한참 뒤였다. 컬럼비아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던 조지 갤럽이 그 일을 해낸 주인공이다.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갤럽은 유명 잡지의 조사결과를 부정하고 루스벨트의 압도적 재선을 예측했고, 실제 개표 결과는 이를 그대로 확인해 줬다. 반대의 결과를 예상한 측은 시장에서 퇴출당했다. 그전까지 시장 소비자의 표본조사 차원에 머물던 과학적 샘플링 기법의 여론조사가 본격적으로 정치의 장으로 발을 디딘 순간이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각종 여론조사 결과가 시도 때도 없이 쏟아졌다. 그럴 만도 하겠다 싶다가도 은근히 짜증이 생기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도대체 어떤 조사기관이 얼마나 다른 기법을 동원하길래 후보 간 지지율이 크게 차이가 나고 심지어 순위조차 일관성이 없는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투표일 6일 전부터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되고 보니 금단현상이 생긴다는 말도 나오지만, 일단 머릿속이 어지럽지 않고 평화로워서 좋기는 하다. 여론조사 기관들은 억울함을 호소한다.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는 선거구별로 국번을 알 수 있는 집 전화가 아니면 조사가 어려운데, 집 전화가 전체 가구의 절반에 불과한 현실적 장애를 극복할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다. 여론조사 기관들도 맥 놓고 있을 수는 없는지라 지역별, 성별, 연령별 가중치를 부여해서 결과를 보정하려 노력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오차는 매우 크다. 이해할 구석이 있는 변명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잘하고 있다고 등을 두드려 주고 싶지는 않다.
이를테면 조사기관 스스로가 신뢰성에 의심을 품고 있는 상황에서 소수점 이하의 지지율까지 표시하며 우위를 무리하게 갈라주는 이유는 뭔지 납득하기 어렵다. 여론조사는 여왕의 마음을 훔쳐보는 과학적 접근법이다. 엄밀하게 유권자의 속내를 읽어내야 한다. 하지만 사이비과학의 엉터리 독심술에 그칠 수도 있다. 개표결과가 예상과 다를 때 선거 여론조사는 미신이 된다. 좋게 봐주면 부실조사지만, 나쁘게 보면 부정행위다. 심지어 선거 조작이라고 공격할 수도 있다. 이처럼 여론조사 사고는 미숙함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해프닝이 아니다. 조사환경이 획기적으로 바뀐다면 달라질 수 있다지만 그때까지 수동적으로 실험대상으로 남겨 둘 일이 아니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난립한 여론조사기관들에 신용등급을 매겨보는 건 어떨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