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문무학 문학박사 | | ⓒ 경북연합일보 | |
졸음은 잠이 오는 느낌이나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피곤하거나 수면이 부족할 때 오지만 심하면 정상적인 활동을 하기가 어렵게 된다. 그 졸음은 늘 나른함이나 노곤함이나 피곤함 등과 연결되어 참기 어려운 것이다. 시(詩)에 등장하는 졸음은 대체로 무엇이라고 딱 꼬집어 표현하기 힘든 묘한 순간으로 묘사되고 있다. 정지용의 '향수' 에서는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으로 졸음의 정도가 엷다는 말로 표현되기도 했는데 졸음의 정도로는 가벼운 것이다.
한국 시에서 졸음이 가장 잘 묘사된 것은 아마도 대구의 요절 시인 이장희의 '봄은 고양이로다' 일 것이다. 가시화하기 어려운 졸음을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라고 노래한 것이다. 졸음을 가시화 한다면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 주변에 떠도는 무엇이라는 것이다. 고양이를 깊이 관찰해보지 못했지만 고양이의 입술을 생각해보면 졸음에 아주 가까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봄은 이렇게 졸음의 계절이다. 유독 이 계절에 졸음이 많은 것은 춘곤증이라는 병 같지 않은 병 때문인 것으로 알려진다. 봄날에 느끼는 나른한 기운인 이 춘곤증이 졸음을 부르는 것이다. 이 봄에 고속도로를 달려본 사람은 고속도로에서 졸아보기도 했을 것이며, 졸음 운전을 경계하는 표어들도 많이 보았을 것이다. 졸음 운전을 하면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어떤 방법으로든지 졸음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고, 한국도로공사로서는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다.
그런데 그 표어들이 너무 과격하다. 졸음운전 사망자가 음주운전 사망자의 5배가 된다고 하는데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되지 않겠느냐고 주장하면 할 말이 없을 듯도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치다. 한국도로공사에서도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졸음 운전을 막기 위해 일부러 과격한 표어들을 모집하기도 했다는데, 잘 된 일로 보이지 않는다. 졸음 운전을 피하도록 졸음 쉼터를 만든 것은 참으로 잘 한 일이지만 말이다. "졸음 운전, 자살 운전, 살인 운전", "졸음 운전! 종착지는 이 세상이 아닙니다", "졸음 운전! 마지막 운전일 수 있습니다", "겨우 졸음에 목숨을 거시겠습니까?" "졸음 운전, 목숨을 건 도박입니다" , "졸면 죽음" 등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이렇게 해서 졸음 운전이 줄어든다고 하면 국민들이 협조해야 한다. 표어를 보고 기분이 좋지 않다고 해도 목숨을 구하는 일이기 때문에 참아내야 한다. 문제는 이런 과격한 표현의 표어를 보면 오던 졸음이 정말 싹 달아날까? 하는 것이다. 필자의 경우는 그럴 것 같다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더 많다. 좀 더 부드럽게 권유하는 표어들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졸음 쫓는 방법을 표어로 만들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운전 중 졸음이 오면 흔히 하는 꼬집기나, 자기 뺨 때리기, 노래 부르기 등을 하게 되는데 이것을 권하는 표어는 어떨까?
"꼬집어보세요", "창문을 열어 보세요", "고향의 봄, 동요를 불러보세요" 오래 생각하면 좋은 표어들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안 해도 될 것 같은 걱정을 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의 언어가 너무 과격해지기 때문이다. 과격한 언어를 쓰는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다. 사용하는 언어가 부드러워야 품격 있는 사회가 된다. 고속도로에서 만나는 과격한 표어의 언어가 고속도로 밖을 오염시키지 않을까 걱정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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