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금성로에서> 마지막 황후의'옥새파동'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6년 04월 07일(목) 18:01
|
|
|  | | | ↑↑ 강병찬
문화부 차장 | | ⓒ 경북연합일보 | | 요즘의 정치를 보노라면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이해가 안 되는 면이 많다. 그 중에 가장 특이한 것이 '옥새파동'이다. 여당 대표의 직인을 옥새라고 표현한 것도 이상하거니와 그 배경도 좋지 못하다. 국정에 무한책임을 져야할 집권여당이 밥그릇 싸움에 몰두해 이전투구를 벌인 작금의 옥새파동은 국민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이로 인해 여당은 이번 선거에서 위기를 자초했다고들 한다. 당리당략과 붕당정치가 나라를 뒤흔들었던 역사의 교훈을 아랑곳하지 않은 자업자득이 된다. 어째든 당내 갈등에 옥새파동이라 이름 지은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사전적으로 옥으로 만든 국왕의 인장을 옥새라 하고, 금으로 만든 것을 금보(金寶), 근대 이후부터는 통칭 옥새(玉璽)나 국새(國璽)라는 말이 통용된다. 여당의 옥새파동 용어가 부적절한 것은 한일병합조약 때 있었던 옥새파동이 반만년 우리 역사에서 가장 뼈아픈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중앙 정치권과 오피니언 리더들이 그때의 엄혹함을 희화화해 옥새파동 용어를 아무렇게나 갖다 부친 경솔함이 있다. 106년 전인 1910년 8월 조선의 마지막 국모 순정효황후는 병풍 뒤에서 어전 회의를 듣고 있었다. 친일 성향의 대신들이 마지막 황제 순종에게 한일병합조약의 날인을 강요했다. 황후는 앞으로 뛰쳐나가 옥새를 자신의 치마 속에 감추고 내주지 않았다. 아무리 매국노들이라지만 황후의 치마를 들춰내 옥새를 빼앗을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그녀의 백부 윤덕영이 일어나 무엄하게도 황후를 밀쳐내고 옥새를 강제로 빼앗았다. 이것이 옥새파동이다. 그 때는 그녀의 시어머니인 명성황후를 칼로 죽여 불태웠던 일제 군경의 총칼이 대궐을 에워쌌고, 다수의 매국노들이 눈이 뒤집혀 있는 엄중한 상황이었다. 황후 치마속의 옥새파동은 17세 그녀로서는 오로지 국권을 지키려고 의연히 나섰던 최고 수준의 투쟁인 셈이다. 순정효황후 윤씨(純貞孝皇后 尹氏, 1894년 ~ 1966년)는 대한제국 순종 황제의 계후(繼后)로 본관은 해평(海平)이다. 정식 시호는 헌의자인순정효황후(獻儀慈仁純貞孝皇后)이다. 그녀는 1904년에 당시 황태자비였던 순명효황후 민씨가 사망하자, 1906년에 13살의 어린 나이에 동궁계비(東宮繼妃)로 책봉됐다. 이듬해인 1907년에 부군 순종이 황제로 즉위함에 따라 역사상 마지막 황후가 됐다. 아버지 윤택영은 사위인 순종보다 겨우 2살 위였고, 세간에서는 아버지 욕심에 어린 생과부를 만든다며 황태자비를 동정했다고 한다. 비록 순종보다 20살이나 연하였지만 부부간의 금슬은 매우 좋았다. 불행히도 그들의 후사는 없다. 부친 윤택영과 백부 윤덕영은 일본으로부터 후작 작위를 받은 친일파였지만, 그녀는 달랐다. 그녀의 오라비인 윤홍섭도 독립운동가이다. 윤홍섭은 순정효황후로부터 독립투쟁 자금을 받아 신익희에게 전달해 임시정부 설립에 자금을 보탰다. 윤홍섭은 또 3·1만세운동 준비 중 윤용구를 설득하려다 일본에 발각돼 형을 살기도 했다. 그녀는 시아버지 고종의 장례식 때인 3·1운동과 남편 순종의 장례식 때 일어난 6·10만세운동을 목격했다. 또 해방과 한국전쟁, 4·19혁명과 5·16군사정변에 이은 한일기본조약 체결과 극심한 정국혼란에 시달렸다. 이러한 격동의 근현대사를 겪으면서도 그녀는 우리 역사상 마지막 황후로서의 기품을 조금도 잃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는 공부에도 적극적이어서 일본어와 영어 공부에 매진했으며, 실력이 타임지를 읽을 정도였다고 한다. 순종 승하 후 낙선재로 옮겨간 순정효황후와 상궁 나인들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한글 소설들을 쌓아두고 읽곤 했다. 황후 사후에 이 책들은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이관돼 '낙선재본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소장됐다. 하나둘씩 모아서 보기 시작했다는데 분량이 89종 2천여책에 달한다. 말년에는 일본에서 수십 년 만에 귀국한 시동생 부부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 시누이 덕혜옹주와 함께 다시 낙선재에서 생활했다. 이처럼 격동의 시대에 마지막 황후의 목숨 건 옥새파동과 권력을 향한 추악한 아귀다툼을 동일한 용어로 표현하는 것은 매우 불손하다. 그렇다면 순정효황후가 목숨 걸고 지켰던 그 옥새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오는 4월13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찍을 붓 뚜껑이 오늘날의 그 옥새가 아닐까? 그 옥새가 무심히 버려지거나 잘못 찍힐 때 대한민국호는 세월호처럼 어이없이 침몰할 수도 있다. 반면에 그 옥새가 올바로 찍힐 때는 대한민국의 찬란한 미래를 열어갈 황금열쇠가 되겠다.
|
|
|
경북연합일보 기자 - Copyrights ⓒ경북연합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
|
|
|
|
|
|
실시간 많이본 뉴스
|
|
|
|
|
최신뉴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