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박정웅 행정학 박사 | | ⓒ 경북연합일보 | |
우리나라의 세시풍속은 계절별로 기후 변화를 잘 알려주고 있다. 즉, 24절기로 나누어진 세시풍속 중에 이맘때쯤인 4월 5,6일은 춘분과 곡우사이에 청명(淸明)으로 이어지는 시기로 날이 풀리기 시작하여 화창해지기 때문에 붙여진 절기이다. 즉 농가에서는 이 무렵 논밭을 다듬어 농사가 시작되는 시기이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의 청명(淸明)조에 따르면 청명에는 버드나무, 느룹나무로 불을 일으켜 임금께 바친 뒤 다시 예하 관청에 나누어 주고, 이 불은 한식에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는데, 묵은 불을 끄고 새 불을 기다리는 동안 밥을 지어 먹을 수 없어 찬밥을 먹는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 한식(寒食)이다. 대체로 절기상 청명과 한식이 겹치거나 하루차이 밖에 없는 절기이다.
오늘날 우리나라 산들은 금수강산답게 푸르른 자연환경 속에서 잘 녹화되어 있다. 1949년 대통령령으로 헐벗은 산을 국민식수에 의한 애림사상을 높이고 산지의 자원화를 위하여 4월 5일을 식목일로 정하여 전 국민이 식수를 하였다. 그 뒤 1960년에는 식목일의 공휴일이 폐지되고 3월 15일을 사방(砂防)의 날로 대체 지정하여 식목의 중요성을 기려 공휴일로 부활했어나, 1982년에 기념일로 지정되었고, 2006년부터는 공휴일을 폐지하였다. 1960년대만 해도 생활자원이 부족한터에 생활 난방이 충분하지 못하여 주로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다보니 전 국토가 민둥산이 되다시피 하였다. 그래서 정해 진 것이 절기상으로 나무심기 좋은 청명절을 전후하여 만물의 생동이 왕성한 이 시기를 식목일로서 국민식수기간으로 설정하여 경제적인 산지 자원화를 국가적으로 도모한 것이다.
실은 매년 4월 5일을 식목일로 정한 유래는 신라가 삼국통일 후 당나라세력을 한반도로부터 몰아내고 삼국통일을 완수한 문무왕 17년(AD677년)음력 2월 25일에 해당되는 날이다. 또한 조선조 성종 24년 1493년 3월 10일에 동대문 밖의 선농단에 나가 왕이 몸소 제를 지낸 뒤 친히 경작에 임한 날이기도 하다. 이처럼 산에 식수를 하던 때에는 전 국민이 나무심기에 참여하여 산지자원보호와 관리에 국가적인 관심사로 이끌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전국토가 푸르고 산림이 울창하게 된 것은 우리 국민의 단합된 힘의 상징이다. 그러나 매년 발생하는 산불 피해는 식목일이 폐지된 이후에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형편이다.
경주의 경우에는 남쪽에서 국도를 따라 진입하면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경주의 얼굴처럼 마주치는 선도산을 대할 때마다 경주의 어설픈 인상을 대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경주는 우리나라의 역사문화의 심장이고 표상이다. 그러나 선도산의 현재 모습에서 자못 머릿속에 그려지는 경주의 인상은 다소 의외의 느낌이 스쳐간다. 즉, 2006년의 선도산 화재로 폐허가 되어 그 잔상이 지금껏 제대로 복원되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는 꼴이다. 선도산은 경주의 주산인 남산과 더불어 경주의 역사적 유물들을 간직하고 있는 역사박물관이다. 즉, 경주인이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경주의 지붕없는 박물관이라 불리는 남산과 서악의 선도산에 산재한 문화유산들이 산불이 진화되고 10여년이 지났지만 선도산에는 타다 남은 앙상한 간목의 군상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볼 때마다 씁쓸한 느낌이다.
관할이 국립공원이라 행정적인 문제때문인지 모르지만, 화재 진압 후 진작 식목하여 관리했다면 오늘처럼 꼴사나운 타다 남은 거목들의 잔해가 앙상하게 보이는 형편은 아닐 것이다. 물론 자연 치유되도록 통제하는 것도 좋지만 10년 전 진작 식수하여 보호했다면 그래도 경주의 표상에 민낯이 붉혀지지 않고 기왕의 가치가 돋보일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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