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김영호 교육학 박사 | | ⓒ 경북연합일보 | |
회향우서는 당나라 시인 하지장(賀知章)이 증성(證聖) 원년에 장원급제하여 고향을 떠나 장안에 가서 살다가 비서감을 사직하고 80고개에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지는 시라고 한다. 다음과 같은 그의 시구가 세월의 허무성을 말해주고 있다.
“少小離家老大回(소소이가노대회) 鄕音無改鬢毛衰(향음무개빈모쇠) 兒童相見不相識(아동상견불상지) 笑問客從何處來(소문객종하처래)” 젊었을 때 고향을 떠났다가 늙었을 때 돌아오니, 말씨는 변하지 않았는데 머리카락은 쇠하였네. 아동들이 보고 알아보지 못하면서, 손님은 어디서 오셨어요? 하고 웃으며 묻네. 천진하게 물어주는 아이들의 모습은 구태여 물어보지 않아도 옛 친구의 유전인자를 받은 것은 분명한 듯 많이도 닮았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청운의 꿈을 이루어 보려고 대도시로 나가 살다가 노령에 사직하고 태어나 자란 고향에 다시 돌아와 보니 자연 환경은 상전벽해가 되었고 인사도 많이 변해 있었다. 객지에 나가 오랜 세월 살았지만 유년기에 배우고 익힌 고향 말씨는 쓰고 있으나 귀밑머리털은 백발이 되어 기력조차 쇠해버렸다. 동네 아이들이 사용하는 고향 사투리는 서로 같지만 아동들은 알아보지 못하고 웃으면서 손님은 어디서 오셨어요? 하고 묻고 있으니 어찌 심동하지 않을 것인가.
하지장은 비록 평민으로 귀향 했지만 청렴하게 공직을 수행하였기 때문에 황제가 경호와 심계일대의 토지를 주어서 넓은 땅을 갖게 되었다. 경호는 역사가 있는 연못으로 강남 최대의 수리시설이었다고 한다. 그것이 하지장의 소유가 되었으므로 하감호라 불렀다. 회향우서 이 시는 높이가 1m, 너비가 80여cm, 정자로 12행, 매 행 15자로 새겨져 있는 데 오늘날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수구초심이라는 말처럼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잊지 못하고 만년에는 환향해서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갖는다. 조용한 산골에 한 두 채의 기와집이 있고, 대부분 초가가 자연스럽게 보이는 고향에는 맑은 공기와 청정한 물이 있고 따뜻하고 다감한 정이 있는 일가친척이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문명사회의 도래로 젊은이들이 고향에서 농사나 지으면서 살기보다 도회지로 나가 대학에 입학하여 학문을 배우고 취업하여 문화적인 생활을 염원하게 되어 농촌은 허가(虛家)가 되고 문전옥답은 초지로 방치되거나 공장부지로 지목 변경되고 말았다. 교통이 다소 편리한 곳에는 공장을 세워서 공산품을 만들게 되었고, 아파트가 지어져서 전래의 고향은 객지에 우거하는 사람들에는 망가진 꿈이 되고 만다. 아파트에서 태어난 요즈음 세대들은 잦은 이사로 인해 고향무적(無籍)이 되어 아름다운 고향의 꿈을 꾸지 못하니, 늙어 퇴직한 후에 농촌에 별장을 지어 고향의 향수를 대리욕구충족으로 대치하는 듯하다.
다시 돌아 온 고향이지만 어린 시절 함께 놀았던 친구들은 없고 아이들만 외래객처럼 당신 어디서 오셨어요? 하니, 그리던 고향이 아니라 변해버린 고향에 대해 만감을 금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산천은 의구하니 마음 또한 옛 그대로 아니겠는 가.
‘눈 감으면 떠오르는 고향의 강...’을 노래 부르며 향수를 달랠 수도 있겠지만 고향의 정서를 가질 수 없는 현세의 아동들에게 전원을 가꾸어 꿈을 키워주도록 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객지에 우거해 살더라도 호적을 못 바꾸게 하던 어른들의 고향의식에는 불변의 애향심이 바탕 하여 있었던 것이며, 그 애향심은 또한 애국심의 모태가 될 수 있기에, 고향의 산야를 망가 버리는 난개발은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골프장으로 바뀌어 회복할 수 없는 고향의 산야에 감정 없이 튀어 오르는 골프공을 무심히 바라만 볼 수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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