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나 공공기관 단체협약의 '고용세습' 조항이 그동안 여론의 따가운 시선 속에 없어지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기업에 남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8일 고용노동부가 근로자 100인 이상 2천769개 사업장의 단체협약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고용세습 내용을 단체협약에 여태껏 담고 있는 기업이 694곳(25.1%)에 달했다. 고용세습은 정년 퇴직자와 장기근속자, 업무 중 다치거나 숨진 근로자 등의 자녀를 우선 채용하거나 가산점을 주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업무상 재해로 숨졌거나 장애를 입은 근로자의 직계가족을 특별 채용하는 것은 그나마 나름대로 공감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오래 근무했다는 이유로 자식에게 고용을 물려주는 것은 바로 현대판 음서제의 부활이다.
정년 퇴직자 자녀를 우선·특별 채용토록 단체협약에 규정한 기업 442곳 가운데는 기아차, 대우조선해양, 현대제철, 한국GM 등 대기업들도 다수 포함됐다. 고용세습은 진작에 없어져야 할 잘못된 관행이다. 법원도 고용세습이 잘못이라는 판단을 이미 내렸다. 2013년 5월 울산지법은 정년퇴직 이후 업무상 재해로 사망한 전 현대차 노조원 유족이 회사를 상대로 낸 고용의무이행 청구소송에서 "조합원의 유족을 업무능력 여부를 불문하고 고용하도록 한 현대차 단협은 무효"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 조항이 사실상 일자리를 물려주는 결과를 낳아 우리 사회의 정의 관념에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위법한 단체협약을 노사가 자율 개선토록 기회를 주고 그래도 시정되지 않으면 노동위원회 의결을 거쳐 시정명령을 내리겠다고 했다. 현행법에는 이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5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는 솜방망이 처벌로 오랜 악습이 없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기업이 조합원 자녀를 우선 채용하는 형태는 무엇보다도 기회균등 원칙에 어긋난다.
때마침 정부와 경제단체, 기업들은 이날 '능력중심채용 실천선언 선포식'을 했다. 합리적인 이유 없이 사진, 연령, 출신 지역, 가족관계 등 불필요한 인적사항을 요구하지 않으며 면접 시에는 구직자의 인격을 존중하고 업무와 관계없는 사적인 질문은 하지 않기로 했다. 일자리는 가족의 생계를 지켜주는 마지막 보루라는 점에서 청년들에게 균등한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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