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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體의 희로애락, 모노톤 欲望으로 칠하다
<인향천리><9> 누드화가 이도우 화백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6년 03월 24일(목)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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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경북연합일보 | | 누드화가 이도우는 영원을 간직한 여체의 신비가 드러나는 그 '찰나'를 응시했다. 이도우는 그 여인의 몸을 통해 인간의 고통스런 삶은 물론 부요와 희망을 그려내고자 붓끝을 부지런히 놀린다. 누드만을 고집스레 그려온 지도 어언 25년이다. 그의 작업실에 소장돼 있는 소중한 작품들과 함께 그의 감추어진 삶과 내면을 잠깐 엿보고 펜으로 묘사해 본다.
1991년 불의의 교통사고는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서울에서 전문분야 인테리어 사업이 궤도에 올랐던 터라 그의 상실감은 더 컸다. 경주 출신 20대의 이도우는 부모로부터 타고난 두 눈 중 하나를 잃어버리자 깊고 깊은 상념에 빠졌다. 좌절감이 엄습할 때면 생을 마감하고 싶기도 했다. 그는 그 길로 야간열차를 잡아탔다. 서울역에서 꽥꽥 굉음을 울리며 출발한 기차는 동대구역에서 그를 내렸다. 거기서 경주까지 가는 비둘기호는 첫 차가 두 시간은 더 있어야 출발한다. 오늘 따라 조바심이 넘쳐 난다. 가끔 이용할 때 그립기만 했던 경주행 열차의 차창 밖 풍경이 오늘따라 유난히 어른거린다. '그래 이제 외눈이 된 거야' 그는 눈 하나 만은 유난히 좋아 전도유망한 화가 지망생이었고, 전문 인테리어에서도 탁월한 눈썰미는 백만불 짜리라고 다들 부러워했다.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 건가. 그는 이 엄혹한 현실을 추호도 인정할 수 없었다.
◇역류하며 헤엄치는 연어의 삶 이도우는 불현 듯 연어가 떠올랐다. 연어는 사해만리 떠돌다가도 알을 낳을 때면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회귀한다. 연어는 세차게 역류하는 물결을 거슬러 상류로 올라간다. 어떠한 고난도 연어에게는 신나는 게임에 불과하다. 연어는 결국 목표한 곳에 도달해서야 알을 낳는다. 이도우가 도달할 곳은 경주시 강동면 왕신리다. 그곳은 가족들의 고향이다. 경주시내에 살던 가족들은 그가 중1때 할아버지의 고향인 왕신리로 이사를 왔다. 가족들은 아담한 기와집을 지어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네댓 살 때부터 마음껏 그려왔던 그림이었다. 중고교 시절에는 소질도 적성도 별 관심이 없었다. 그냥 그림을 그렸고, 재주가 좋아 늘 학교 대표로 사생대회에 나갔을 뿐이다. 처음에는 대학 진학도 다른 과를 지원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는 낙방을 했다. 이듬해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회화과에 합격했다. 크게 어렵지 않게 들어간 대학이라 오히려 소중함을 모르는 캠퍼스 생활을 보냈다. 졸업 후에는 서울로 진출했다. 그림을 위해서가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그의 타고난 눈썰미는 큰 힘을 발휘했고, 인생은 순탄하기만 했다. 그랬던 그는 삶과 죽음의 문턱을 넘고서야 발걸음을 고향으로 향했던 것이다. ◇금기의 벽을 허무는 마음으로 그림을 다시 그리려고 마음먹은 그에게 미술계 대선배의 한마디 조언은 너무나 뼈아팠다. "도우는 눈을 다쳐 구상화(사실적으로 표현한 그림)는 못할거야"라는 한마디에 그는 오기가 발동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의 복심에 있었던 '여체 누드'는 가장 정밀한 관찰력을 요하는 분야다. 그는 왕신리 마을 뒷산에 올랐다. "두 손이 없는 화가는 발가락으로 그림을 그리고, 손발이 없는 화가는 붓을 입에 물고 그림을 그린다", "나는 누드를 그리겠다" 누가 듣든 말든 그는 목청껏 외쳤다. 그가 내지른 고함은 골짜기를 따라 멀리 메아리쳤다. 이도우는 "몸은 가장 아름다운 자연이며 누드는 벗는 것이 아니라 입지않은 것"이다. 그 이후 그는 25년간 누드만 그리고 있다. 지금까지 그린 누드는 300여점이다. 전업 작가 치고는 많지가 않다. 1995년 대망의 첫 개인전 이후 13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개인전에 신작을 출시하는 점으로 미뤄 2년 터울로 여는 개인전을 매개로 연간 10여점의 그림을 생산했다. 그의 개인전은 주로 서울에서 열렸다. 경주에서는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누드화는 점당 가격은 비싼 편이지만, 잘 팔리지는 않는다. 특히 그의 독특한 화풍이 중앙무대에서 극찬을 받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지방에서는 아직도 금기의 벽이 허물어지지 않은 탓이다. ◇"내 아내 같은 모델 구합니다" 지난 2014년 서울 청담동 칼리파 갤러리에서 이도우 화백의 누드개인전이 한창이었다. 그 곳에는 누드화의 모델도 와서 이도우의 붓끝에서 영원히 그려진 자신의 몸매를 그윽하게 감상했다. 누드화에 눈을 뜬 고상한 매니아들도 발길을 이었다. 이도우는 감개가 무량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물기로 눈가를 적셨다. 그 때 그 여성 모델은 참으로 어렵게 섭외됐다. 이도우가 직업모델을 외면하고 일반 여성들만 모델로 고집하기 때문이다. 이도우는 모델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여성을 그린다. 그 여인의 신체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마음을 그린다. 그에게 여인이란 어머니이자 자연이다. 또 여인은 삶이요, 역사요, 희망이다. 주로 서울 출신인 그 일반인 모델들이 경주의 한 시골마을에 내려와 옷을 벗어 보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도우는 내년 개인전을 위해 또다시 모델을 구하고 있다. 그는 '아내 같은 모델'이 자기 앞에 나타나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모델 같은 모델이 아닌 아내 같은 모델은 예쁘거나 날씬한 여인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 솔직한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이 이도우의 지론이다. 또 성격이 좋아 소통이 잘되는 분은 금상첨화다. 어떤 때는 아내를 벗게 할 때도 있단다. 교사로 재직 중인 그의 가장 든든한 동반자인 아내를 위해 그는 붓을 한시도 놓을 수가 없다. ◇영원 간직한 '모노톤' 여체의 신비 그의 누드는 모노톤이 대다수다. 흑백 같은 칼라이며 동양화 같은 서양화다. 그의 매니아들은 그의 모노톤 누드가 눈에 익지 않은 신비감과 흑백사진 같은 은은함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모델의 포즈보다는 보는 각도와 더불어 독창성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모노톤도 그가 칼라를 끊임없이 변모시킨 결과다. 이도우 그림의 배경에는 그 여인의 real story(삶의 이야기)도 그려 넣어야 한다. 이도우는 "몸은 가장 아름다운 자연이며 누드는 벗는 것이 아니라 입지않은 것"이라고 말한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이도우의 작품에 대해 "40여 년간의 영화보기로 영화적 관음증에 젖을 대로 젖은 내 시선을 치명적으로 사로잡은 것은 그러나, 위 가슴이나 그 가슴을 머금고 있는 살들도, 또 그 자극적 거웃이나 그 거웃을 에워싼, 벌린 다리들도 아니다. 여인의 얼굴…가슴께의 밝음과 다리께의 어두움을 동시에 머금고 있으며, 편할 대로 편한 자세로 오른쪽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 무심하면서도 입체적인 표정! 거기에는 어떤 순간이 배어 있다. 아마추어 모델임이 분명한, 그래 낯선 남자 앞에서 적잖이 부끄러워했을 젊은 여인이, 자신이 벌거벗었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린 '찰나'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영원을 간직한 여체의 신비가 모노톤에 휘감겨있는 그 '찰나'는 이도우의 크지 않은 화폭으로 옮겨져있다. 강병찬 기자jameskang65@kby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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