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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筆寫)의 뜨거운 바람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6년 03월 22일(화) 16:12
↑↑ 문무학 문학박사
ⓒ 경북연합일보

필사 열풍이 불고 있다. 필사(筆寫)가 무엇인가? '책이나 문서 따위를 베끼어 쓰는 것' 이다.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은 베껴 쓴다는 것은 인류의 지식 전수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런데 이 속도의 시대에, 한없이 느려빠지고 많은 시간이 걸리는 필사를 왜 하고 있단 말인가? 필요하면 복사기에 걸어 '드르득' 소리 한번 들으면 복사가 다 되는데 말이다. 그런데 그냥 그런 사람 몇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필사를 통해 행복을 찾고, 그런 사람들이 늘다보니 필사를 위한 책 출판이 붐을 이룰 정도로 열풍이 불고 있다는 것이다.

 필사를 위한 책이 2010년 20종에 불과하던 것이 2015년 46종이 발간되었고 금년 초에는 이 분야에서 베스트셀러가 나오기까지 했다. 성경이나 불경 등도 필사 족들에게 인기 있는 책이다. 굳이 필사를 위한 책만을 필사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자기가 좋아하는 책들을, 자기가 알고 싶은 것들을 담은 책이면 무엇이든 좋을 것이다.
 이렇게 필사를 즐겨하는 사람이 늘어나니까 필사에 필요한 책도 책이지만 필기구와 공책도 그 판매량이 늘고 있다. 만년필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31%나 증가했다고 한다. 만년필 동호회 같은 데서는 한 자리에 모여서 필사를 하기도 한다는데 그야말로 새로운 문화의 한 양상이 되고 있다. 필사가 재미와 치유를 겸할 수 있는 것이니까 이런 열풍은, 열풍에 그칠 것이 아니라 태풍이 된다고 해도 나무랄 사람 없다. 
 
 문화계에서 오랜만에 듣는 반가운 소리다. 너무나 빠른 속도로 지나가서 세상 한번 쳐다볼 겨를도 없는데 필기구로 공책에 책을 베껴 쓰다니 이 얼마나 오붓하고 아름다운 일인가. 앉은뱅이책상에 앉아 연필에 침 묻혀가며 숙제를 하던 먼 옛날이 참으로 그리워지기도 한다.
 컴퓨터를 쓰지 않았을 때는 필사가 모두였지만 컴퓨터를 쓰기 시작하고는 필기구를 거의 쓰지 않았다. 작가나 시인 지망생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베껴 쓰는 것은 거의 기본적인 일이었다. 문장력을 기르기 위해서 하는 필사였다. 지금도 습작기의 작가지망생들이 이 길을 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시대에 불고 있는 필사바람은 이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시인 장석주는 필사를 "필사는 느린 꿈꾸기이고, 나를 돌아보는 성찰이며, 행복한 몽상이다" 이라고 했다. 필사를 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필사의 이유는 그 어느 것 하나 고개를 끄덕거리게 하지 않는 것이 없다.
 "매일 저녁 필사를 하지 않으면 허전하다", "딱딱한 펜과 부드러운 종이의 질감이 손끝으로 전해지고 펜과 종이가 부딪쳐 사각거리는 소리를 듣는 것이 그리 행복하다" 필사를 하면 "손 글씨를 쓰는 속도만큼 시간이 느려지는 것 같고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는 느낌을 받는다" 고 한다.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필사를 시작했다는 사람은 '시공간이나 비용의 제약을 받지 않고 혼자 할 수 있는 취미'라고 강조했다. 

 이제 필사는 그 내용이 무엇이든 필사 그 자체가 하나의 취미가 되었고, 해독제가 되었다. 쓰는 만큼 느려지고 느려진 만큼 치유된다는 것이다. 최근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에서 이세돌 9단이 4:1로 패한 이후 알파고의 능력과 인간의 힘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었을 덴데, 이런 필사가 유행하는 걸 보면 인간은 참으로 인간일 수밖에 없다는 안도감이 들기도 한다.
 찰리 체플린의 '위대한 독재자'에 나오는 대사 "우리에게는 기계보다 인류애가 더욱 절실하고, 지식보다는 친절과 관용이 더욱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은 비참해지고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란 말이 더욱 새롭게 들린다.
경북연합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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