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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소왕과 진신석가 공양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6년 03월 17일(목)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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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9년 봄 어느날, 망덕사의 당간 위에는 오색 깃발이 휘날리고, 금빛 영락이 반짝이고 있었다. 절의 뜰 안은 말끔히 청소되어 티끌하나 없고, 곳곳엔 대낮인데도 꽃초롱에 불이 밝혀지고, 법당마다 온통 꽃으로 장식되었다. 그날은 효소대왕께서 친히 불공을 드리러 행차하시는 날이기 때문에 스님들은 화려한 장삼에 가사를 걸쳐 입고, 임금님의 행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임금님께서 행차하셨다. 당나라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는 가끔 망덕사에 불공을 드려야 했다. 임금님께서 막 법당으로 드시려할 때 누추한 옷을 입은 못생긴 중 한 사람이 나타나 "빈도도 재(齋)에 참여하기를 바랍니다."하고 청했다. 임금은 속으로 불쾌했다. 국왕이 불공을 드리는데 이러한 거지 중이 불손하게도 재에 참석하다니, 그러나 불공을 드리는 자리에 중이 참석하겠다는데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임금은 불쾌함을 억지로 참고 말석에 앉으라고 명령을 내렸다. 화려한 의식이 다 끝나고, 모두 공양을 들고 있을 때 임금은 아직도 불쾌한 마음이 가시지 않아 그 남루한 중을 불러 물었다. "비구는 어디 사는가?" 중은 공손하게 합장하며 "남산 비파암에 있습니다."하고 대답했다. 임금은 비웃는 어조로 "남산으로 돌아가거든 국왕이 친히 불공드리는 자리에 참석했단 말은 누구에게나 하지 말라."하였다. 듣고 있던 중도 웃으면서 "네 잘 알겠습니다. 폐하께서도 진신석가(眞身釋迦)를 공양했다고 누구에게나 말씀하지 마십시오."하고 두 손으로 무릎을 치니 중의 전신에서 광채가 나며 땅에서 피어나는 오색구름을 타고 남산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누추한 중은 바로 석가부처님의 진신이었던 것이다. 임금은 그때서야 놀랍고 부끄러워 허겁지겁 산으로 올라가서 절하고, 사람들을 보내어 진신석가를 찾게 했다. 사자들은 남산의 여러 골짜기로 흩어져 찾아보았으나 비파암 곁의 한 바위에 지팡이와 바리때(스님의 밥그릇)가 놓여 있고 진신석가의 모습은 다시 볼 수 없었다. 사자들은 돌아와서 사실을 임금께 아뢰었다. 임금은 사죄하는 뜻으로 비파암 아래 석가사를 세우고, 진신석가가 사라진 바위 위에는 불무사라는 절을 지었다. 그리고 지팡이와 바리때를 각각 두 절에 나누어 보관하게 했다. 이 이야기 속에서는 임금이라 할지라도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라는 교훈도 있겠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부처님을 믿되 부처님의 영이 신비한 바위 속에 살면서 때때로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중생을 제도한다는 신라 서민들의 색다른 신앙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신앙은 남산에 수없이 바위에 새긴 불상들과도 관련이 있다고 믿어진다. <모화초등학교 경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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