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억만장자들 가운데 4분의 3가량은 자신의 힘이 아니라 상속받은 재산으로 부자가 된 것이며 이 비율이 세계에서 5번째로 높은 수준이라는 소식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미국의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가 지난 20년간 경제잡지 포브스가 선정한 억만장자들을 분석한 결과 자산 10억 달러 이상 부자 가운데 상속자 비율은 우리나라가 74.1%로 세계 평균(30.4%)의 2배가 넘었다. 우리나라보다 상속 부자의 비율이 높은 나라는 쿠웨이트, 핀란드, 덴마크, 아랍에미리트 등 4개국뿐이었다. 모두 왕족이 지배하는 국가이거나 경제규모가 왜소해 억만장자의 수가 많지 않은 곳이다.
세계의 억만장자 가운데 1%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들만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상속 억만장자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시장경제로 이행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중국의 상속 억만장자는 2%에 불과했고 미국(28.9%), 일본(18.5%)도 우리나라에 비해서는 크게 비율이 낮았다. 싱가포르(37.5%), 홍콩(33.3%), 대만(17.9%), 인도네시아(10.5%) 등 아시아 신흥국들도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나라의 젊은 층 일각에서 '수저 계급론'을 들먹이며 좌절하고 있는 것에 찬성할 수는 없지만, 이런 문제 인식에 근거가 없지는 않음을 통계가 보여준다. 실제로 재계 50위 이내 기업집단 가운데 아직 창업자의 2, 3세로 경영권이 넘어가지 않은 곳은 부영, 동부, 미래에셋 등 손꼽을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는 세계적인 추세와는 정반대다. 전 세계 자수성가 부자의 비중은 1996년 44.7%로 상속 부자보다 적었지만 'IT 붐'이 일었던 2001년 58.1%로 뒤집었고 2014년에는 69.6%로 더욱 늘어났다. 미국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애플 창업자 고(故) 스티브 잡스,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 등 자수성가한 억만장자들이 끊임없이 배출되고 있다.
새로운 성장동력의 확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창의와 혁신이 합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고 도전을 장려하는 문화와 풍토를 조성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 정부의 정책적 의지나 법과 제도가 이런 쪽으로 흐름을 유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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