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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역사, 비운의 충신 강상인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6년 03월 15일(화) 11:22
↑↑ 강병찬<문화부 차장>
ⓒ 경북연합일보
대한민국 오천년 역사에는 충신과 열사가 많지만, 비극의 역사 가운데 비운의 충신 이야기는 후세의 마음을 애절하게 한다.
 그들 충신은 왕가가 아니어서 애사(哀史)에 들지 못하며, 복권이 안됐거나 늦어져 멸문지화의 후유증으로 인해 재조명의 기회를 잃기도 해 비통함을 느끼게 만든다.
 우리 성씨 중에 주목을 받지 못하는 진주강씨(晉州姜氏)의 역사는 이러한 비극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진주강씨의 시조인 강이식(姜以式) 장군은 여·수전쟁(麗隋戰爭)이 발발하자 고구려의 최고 사령관인 병마원수(兵馬元帥)를 맡아 정병 5만을 이끌고 전투에 참가했다. 성동격서의 탁월한 전략을 펼친 강이식은 수륙양공의 총공세로 수나라 군사들을 섬멸하는 큰 전과를 올렸다.
 강이식이 진두지휘한 임유관전투(A.D. 598)의 대승리로 인해 수나라 문제 정권은 몰락했고 고구려는 요동 지방을 안전하게 확보했다. 하지만 역사는 을지문덕의 살수대첩(A.D.612)과 양만춘의 안시성 전투(A.D.645)만을 주요하게 언급하고 있다.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에 신라조정은 강씨의 본관을 진주로 정했다. 이는 고구려 명문거족을 원지(遠地)로 보내 견제하기 위한 방책으로 전한다.
 진주강씨 중 비극의 역사 가운데 비운의 충신은 바로 조선 태종 때의 강상인(姜尙仁· ? ~ 1418)이다. 강상인은 태종이 왕자이던 시절부터 가신이 돼 왕위에 오르는 데 공을 세웠다. 그는 순금사 대호군(巡禁司大護軍)을 거쳐 1418년 병조참판이 됐다. 그해 세종이 즉위하자 그는 군사업무를 병권을 지닌 상왕(上王 태종)에게 보고하지 않고 세종에게만 보고했다. 이 때문에 상왕에 의해 녹권과 직첩을 몰수당하고, 지방의 관노가 됐다. 이후 원종공신임이 참작돼 용서받았으나 예전에 전 병조판서 박습(朴習) 등과 함께 병권이 양분됨은 옳지 않다고 한 말로 인해 다시 하옥됐다.
 이후 태종과 세종을 이간시켜 부자의 정을 끊으려 한다는 대간(臺諫)의 탄핵을 받아 옹진진(甕津鎭)에 충군(充軍)됐다가 모반대역죄로 처형됐다고 세종실록은 전했다.
 세종 치세는 학문과 문물 뿐 만아니라 현재의 국경을 확립하고 대마도를 복속하는 등 한민족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했다. 그 정점에 강상인이 있었고, 그 이면에 또한 강상인이 있었다. 병권은 부자간에도 나눌 수 없는 왕권임을 강상인은 알았으며, 그는 주저 없이 평생의 주군이었던 태종에게 등을 돌리고 세종에게 병권을 바쳤다. 그 대가가 얼마나 혹독한가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었다.
 이를 사가들은 강상인의 옥(姜尙仁의 獄)이라 칭하는데 종국에는 세종의 장인이자 영의정인 심온의 죽음으로 그 사건은 막을 내렸다.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이 사건에서 우리는 강상인에게서 유구한 민족과 국가를 위한 희생제물이 될 것임을 스스로 자각하고 실천하는 가장 강직한 충신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진주강씨의 비운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강씨의 본관인 진주는 임진왜란 때 3대대첩인 '진주대첩'과 더불어 '진주참상'의 처참함이 얼룩진 곳이다.
 1592년 10월 제1차 진주성 싸움은 진주목사(牧使) 김시민(金時敏)이 지휘한 3천800명의 조선군과 양민 2만 여명이 진주성을 방어하고 왜군에게 큰 타격을 입힌 전투다. 진주성은 병력과 무기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필사적으로 싸운 끝에 2만여명에 이르는 왜군 정예병의 공세를 분쇄했다.
 하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1593년 6월 19일 9만 3천명의 병력이 진주성을 공격했다. 진주성 수성을 맡은 병사는 약 6~7천명의 병력과 약 6만 명의 일반민들이 있었다. 일진일퇴의 공방 끝에 거의 모든 장병이 전사하고, 29일에 진주성은 함락됐다. 성이 함락되자 왜군은 성안에 남은 군·관·민 6만 명을 사창(司倉)의 창고에 몰아넣고 모두 불태워 학살하고 가축도 모두 도살했다. 이 또한 한민족의 운명을 대신해 진주강씨가 짊어졌던 희생의 제물이었음을 역사는 웅변하고 있다.
경북연합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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