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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번뇌의 연속…그 길에서 찾은 열정
<인향천리> 이연균 화백을 만나다
부유한 가정에서 미대 진학
이어진 시련에 방황 또 방황…
혼돈 속 찾은 경주, 눌러 앉아
8년 전 산길에서 본 솔가리비
오브제의 마티에르 전율 느껴
다시 피어오른 예술가의 열의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6년 03월 06일(일)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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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경주시 성건동의 작업실에서 솔잎을 소재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연균(55) 화백. | | ⓒ 경북연합일보 | |
이연균 화백의 솔잎 그림을 본다. 솔잎 말리고. 솔잎 한 땀 붙여서. 다 지난 변명 옮겨놓았다. 흩어지고. 날리고. 희미해진 흔적. 지워지고 있지만. 잊히지 않는 자국. 그대 사라질. 미소까지. - 정태경 시인의 '모나리자 소멸'
어머님의 아련한 모습처럼 지워지지 않는 향기와 거친 손을 닮은 솔잎을 소재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이연균(55) 화백의 성건동 작업실을 찾았다. 솔 향과 본드향이 묘한 조합을 이루어 코끝을 자극하는 작업실엔 조명등 아래 회갈색빛 질감의 작품들이 늘어서 있다. 그는 "8년 전 어느 때에 늘 다니는 산길에서 무수히 떨어져 있는 솔가리비를 본 순간 전율처럼 다가온 오브제의 마티에르는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솔잎을 소재로 활용하게 된 계기를 말한다. 이 화백은 "오브제는 예술과 무관한 물건을 본래의 용도에서 분리해 작품에 사용해 새로운 느낌을 일으키는 상징적인 물체이며 마티에르는 '질감'을 뜻하는 프랑스어다"고 자상하게 설명도 덧붙인다. 문득 비를 맞고 들어선 작업실에서 이 화백을 보며 인생을 듣기엔 무엇인가 빠진 듯 한 분위기에 생판모르는 남에게 자신의 속살을 보여야 하는 이 화백을 위해 막걸리 집으로 자리를 옮겨 시작된 이야기이다. 그는 1961년 대구 대명동에서 태어났다. 일본을 오가며 사업과 직장생활을 하시던 아버님을 두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4남 2녀의 형과 누나들 사이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손찌검 한번 당하지 않고 곱게 자랐다. 처음 그림에 소질을 보인 것은 누구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듯 집안의 벽들을 화선지 삼아 크레용으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고. 60년대에 다른 집 아이였으면 혼이 날만한 사건임에도 한 번도 매를 들지 않았다는 아버님. 그렇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막둥이로 태어나 부모와 형제들의 사랑 속에 자라면서 그의 인생을 화가의 길로 이끈 계기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찾아온다. 이 화백은 "먼 외가 친척인 박찬호 선생의 화실에 놀러가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그림수업이 그 계기이다. 미대 지망생들이 박 선생의 화실에서 그림수업을 받고 있는 사이에 스며들 듯 그렇게 시작되었다"며 그때를 회상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며 당연히 그는 그림을 그리는 모든 것이 미대생이 된다는 확신으로 이어져 멈춘 곳이 영남대학교 회화과 이다. 그러나 그는 대학에서 방황한다. 아버님의 갑작스런 타계로 어려워진 가계.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대학에다, 어린 시절 시작한 그림의 수준이 대학 강의가 따라가지 못하는 실망스러운 상황이 대학에 흥미를 잃고 말았다. 이 화백은 "아마 현실과 작품사이에서 갈등하는 생활이 그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하고 순수 미술전공자가 가야할 길은 화려한 백수 뿐 이었다"며 "할 수 있는 것은 강사와 디자인 일. 그러나 작품 활동에 대한 현실과의 괴리로 인해 갈등만 깊어 갈 뿐 현실은 나를 놓아 주지 않았다"고 지금까지 끝나지 않는 현실을 그는 착착한 심정으로 읍조리며 막걸리 잔을 든다. 그렇게 혼돈 속에 경주를 찾은 것이 1987년도. 현곡의 지인의 도자기 공장에 놀러와 눌러 앉은 것이 30년째이다. 작가의 삶을 접고 현실을 택해 보문 호텔에 취직해 작년 말까지 재직했다고 한다. 그러나 화가로서의 작품에 대한 미련과 열정이 그를 일반적인 가정을 꾸릴 수 없게 했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열정을 포기하지 못하기에 가정을 돌볼 수 없음을 알기에. 이 화백은 "10년 전 그때 나를 어머님의 회상처럼 강력하게 자극하는 오브제의 존재를 일상에서 만나고 다시 작가의 길을 갈수 있었다"며 "늦었다고 할 때가 빠른 때라는 말이 있듯 어려웠지만 10년 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해 더욱 나 자신을 몰아붙이기 위해 작년에 직장을 떠나 전업 작가의 길을 택했다"고 말했다. 얼근하게 취해 붉어진 얼굴과 신념에 찬 목소리가 평생을 바쳐 작가의 길을 가기 위한 누에고치의 삶을 떨쳐버리려 할 때 기자의 수첩이 접히고 펜도 멈추었다. 이제 그는 중년의 나이를 넘겨 작가의 길을 보았고 자신의 길을 확신한다. 늘 푸른 상록수인 소나무는 낙엽보다 더 많은 솔잎을 끈임 없이 피워 푸르듯, 회환과 갈등보다 더 많은 이 화백의 한 땀 한 땀 붙여 나가는 손끝에는 항상 솔잎이 들여져 있다. 권민수 기자 kms@kby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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