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金城路에서> '출생의 비밀'신라 마복자(摩腹子)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6년 02월 25일(목) 11:59
|
|
|  | | | ↑↑ 강병찬<문화부차장> | | ⓒ 경북연합일보 | | 요즘 텔레비전 드라마의 주요한 꺼리가 '출생의 비밀'인 것처럼 고대 사회에서도 가문을 일으키거나 신분 상승을 위한 드라마틱한 '혼외정사(婚外情事)'가 많았다고 한다. 김대문이 지은 화랑세기(花郞世記)에 나오는 신라의 '마복자(摩腹子)'가 그것이다. 마복자는 신라의 독특한 제도로 임신을 한 여자가 남편의 동의하에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과 관계를 한 후 낳은 아들을 일컫는다. 물론 고대 국가들에서는 유사한 제도나 풍습이 있다. 가계를 잇기 위해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혼인을 하는 형사취수(兄死娶嫂)는 동서양에 널리 퍼져있었던 제도다. 고구려에는 임금의 여인들 중 황후(皇后)는 궁중에서 임금과 같이 생활하지만, 비(妃) 이하는 각자의 남편을 두고 주기적으로 임금의 시중을 들었다. 만주족은 근세까지도 여성이 모자라 '일처다부제(一妻多夫制)'가 일반적이었다. 한 여성은 월별로 돌아가며 남편을 바꾸면서 후계가 섞이는 것을 방지하며 혼인관계를 지속했다. 서양에서도 '프리마 녹테'(Prima Noctes, 초야권·初夜權)가 있었다. 귀족이 평민의 결혼식에서 신부를 취해 첫날밤을 지낼 권리가 그것이다. 이것은 나중에 '결혼세'로 바뀌었다고 한다. 또 중세에는 혼례를 치른 첫날밤 신부(新婦)의 부정(不淨)한 '하혈(下血)'을 정화한다는 이유로 신부(神父)의 밀실에 보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도 있다. 일부 학계에서는 '마복(摩腹)'을 성관계를 의미하는 '배를 맞춰 비비다'가 아니라 '손으로 배를 문지르다'로 해석해 '입양(入養)'과 관련된 상징적 절차로 해석하기도 한다. 어째든 신라에서는 마복자 제도로 인해 높은 지위의 세력들은 정치적인 지지자를 갖게 되고, 마복자는 후원자를 갖게 되는 모양이었다. 왕들도 마복자를 가졌고 화랑들이나 낭두들도 마복자를 가졌다. 이는 일종의 사회적 의제 가족관계를 맺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복자 제도는 '마복칠성(摩腹七星)' 이야기로 인해 정작 정치적 역학관계로서 중요성이 있다. '화랑세기' 1세 위화랑 조에는 비처왕(소지왕)의 마복자들이 마복칠성으로 나온다. 그들은 개인적이거나 가문과의 관계를 넘어 정치에 깊숙이 간여했던 귀족사회의 일반적인 관습이었다고 보인다. 화랑의 제1대 풍월주인 위화랑의 경우 소지 마립간의 마복자였으며, 사다함과 진흥왕 등의 부인이었던 미실궁주의 아들들도 상당수가 마복자이다. 마복칠성이라고 불린 마복자들은 벽아부인이 낳은 위화랑, 보혜의 아들 아시공, 준명공주의 아들 수지공, 홍수의 아들 이등공, 보옥공주가 낳은 이사부, 묘양이 낳은 비량공, 그리고 가야의 융융공주가 낳은 융취공 등이었다. 문화칼럼니스트 황대욱 교수는 칼럼에서 "순교로써 불국토를 열었다는 이차돈(異次頓)은 해상 강국 우산국(于山國, 현 울릉도)을 정벌한 신라장군 이사부(異斯夫)의 조카였다. 당시 불살생(不殺生)을 교시 내리고 스님이 될 정도로 불심(佛心)이 깊었던 법흥왕이지만 왕위에 오른 15년 동안이나 불교를 공인(公認)하지 못한 것은 임금의 국정수행에 영향력을 행사한 이사부 등 마복칠성의 정치적 반대 때문이었다"고 평가한 대목이 있어 마복자의 사회·정치적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만 하다. 이와 같이 마복자도 그 당시의 풍속들을 이해하지 못한 나머지 미개한 것으로만 여길게 아니다. 인간의 본성과 관계성에 대한 근본적인 명제로 고찰해야 한다. 오히려 역사·문화 스토리로 승화해 관광상품화할 필요도 있다. 스토리는 복잡다단하고 드라마틱해야 제 맛이 난다.
|
|
|
경북연합일보 기자 - Copyrights ⓒ경북연합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
|
|
|
|
|
|
실시간 많이본 뉴스
|
|
|
|
|
최신뉴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