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문무학 문학박사 | | ⓒ 경북연합일보 | |
세상이 변한다는 것은 사람살이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옛날에 없던 것이 생겨나서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주고, 옛날 것은 모두 불편한 것이 되고 말았다. 오늘날은 인간에게 불편한 것은 절대로 용서될 수 없다는 듯이 모든 것이 편리만을 쫓아가고 있다. 삶을 편리하게 하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편리만을 쫓아 신중함을 잃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이 가벼워지는 세상을 붙들려고 애쓰는 것이 예술이고, 예술 중에서도 문학이 그 역할의 중심에 서 있다. 그런데 우리 시(詩)에서 이상한 바람이 불고 있다. 시가 안 읽힌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최근 'SNS 시'에는 독자가 몰려들고 있다고 한다. SNS 시란 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에 짧은 문구로 오르는 시를 말한다. 그 특징은 짧고, 시의 소재도 일상생활에서 찾을 수 있는 단순한 것들이다.
시의 소재가 일상생활에서 나오는 것이야 나무랄 일은 아니지만, 그것이 세상을 가볍게 하는데 기여(?) 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우려된다. 짧은 것도 짧은 것이지만 재미있다는 반응을 크게 얻고 있다. SNS 시를 쓰는 시인을 SNS 시인이라고 부르는 것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이 시인들이 무대에 서면 '글배우'라고 부른다고 하니 달라져도 많이 달라지는 것이다. SNS에서 인기를 끌면 오프라인 영역으로 진출, 책으로 출판된다.
주류 문학계에서는 "이런 게 시라고 할 수 있느냐?" 는 반론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미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을 형성했다. 가벼움을 쫓는 시대 흐름을 막아 낼 장사가 없다. 이미 국립중앙도서관에서도 주류문학은 아니지만 이 열풍에 의미를 부여하여 'SNS 시인시대 전(展)'을 1월 26일부터 3월 13일까지 열고 있다.
주류문학계에서 고개를 흔들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안 될 가장 큰 이유는, 문단 밖의 사람들, 즉 독자들이 SNS 시를 찾아 읽고는 "좋아요" 를 연발한다는 데 있다. SNS 시를 보자. 「덜 익은 삼겹살」,하상욱 "내면을 바라 봐/ 외모에 속지 마" , 이환천 「맥주」, "언제부터/ 내 위상이/ 소주 깔 때/ 타서 먹는/ 탄산수가/ 되었는가." 최대호 「너의 사진」,"내 사진첩에 가득 찬/ 너의 사진들/ 볼 때마다 뿌듯하고 기분이 좋아져/ 내일도 찍어야지/ 음식 사진." 과 같은 글이다. 어쨌든 어렵지 않고 재미가 있다.
주류문학계에서도 독자를 잃고 있는 현대시가 가야 할 길을 모색하는 실험시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최동호 시인이 주장하는 '극서정시(極敍情詩)'다. 장황한 서정시, 난삽한 서정시, 소통불능의 서정시를, 한국 시의 문제로 인식하고 우리 시의 나아 갈 길로 제안된 시다. 간결, 평이, 단순을 지향하는 극도로 정제된 서정시, 다시 말하면 단형의 소통 가능한 서정시를 지칭하는 것이다. 한 행 또는 서너 행을 이상적인 형태로 지향하고 있다.
예를 들어보면, 최동호,「망월의 밤」, "설월(雪月)의 검에는 피가 묻지 않는다." 조정권의 「청빙가(聽氷가)」10. "내 화두는 추위 한 점 안 묻은 달/ 설월(雪月)의 처마 끝." 서정춘, 「돛」, "바다 위, 거미줄 친 흰 돛단배들/ 물거미 입에 물린 흰 나비의 우화(羽化)." 같은 작품들이다. 길이는 짧지만, 인간 정신의 번쩍임이 있고 생각해야 할 거리가 많다.
SNS 시도 짧고, 극서정시도 짧다. 그러나 다르다. 시를 길이로 그 우열을 가릴 수 는 없다. 어느 것이 시 같으냐는 질문에는 극서정시라고 답하겠지만, 어느 것이 재미있느냐고 물으면 SNS 시라고 답할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우리 시 어디로 가야 하는가? 시는 시의 길을 가야 하는데…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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