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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墨池 칼럼>“한수원 社名을 韓水寺로…"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6년 02월 21일(일)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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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慶州)의 민도(民度)를 적절하게 매기려 해도 딱 떨어진 답을 찾을 수가 없어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적어도 신라 천년 수도(首都) 시민이라는 자부심은 옛말이 됐고, 집단이기주의(集團利己主義)로 물들어 있는 것이 오늘의 '경주'다. 경주가 도대체 왜 '이 지경이 됐는지', 또는 '난파선 형상인 지'에 대해 시민이나 선출직(選出職)들이 깊은 반성을 했으면 한다. 국내 최대 에너지 공기업 한수원 본사가 경주시 양북면 장항리 토함산 기슭에 둥지를 틀었다. 위치상이나 접근성을 말하자면, 경주 고속 터미널 기준으로 승용차로 30분 거리다. 그리고 이곳까지는 시내버스 등 대중 교통망이 연결되지 않는 등 이동 수단은 승용차나 택시에 의존해야 만 하는 산속 '오지(奧地)'다. 한편으로 수도권 주민들에게는 '30분 출퇴근 시간이 무슨 대수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이 공기업의 '입지(立地)'가 수천억 원의 혈세가 들어간 '공공건물'이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 정책 결정과 추진에 있어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방관한 대표적인 사례가 한수원 본사 신사옥이다. 이 공기업이 경주로 오게 된 배경은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이하 방폐장) 때문이었다. 지난 2005년 노무현 정부는 원전 가동 이래 '골칫덩어리'인 방폐장을 조성하기 위해 주민 투표(住民投票)라는 기발한 발상을 했다. 여기에는 3천억 원의 거액이 걸렸다. 어찌 보면 '노무현 배(盃) 방폐장 유치대회'였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성했다. 이 과정에 시장을 비롯 지역인사들이 삭발을 하면서 시민들에게 유치 호소를 했고, 경주시 전 행정력(行政力)이 총동원되는 등 전시체제를 방불케 했다. 특히, 이 국책사업 유치는 민관(民官)이 합심한 합작품이었으며, 신라 천년 수도 주민들의 역량을 결집한 쾌거였다. 이처럼 민관이 똘똘 뭉친 것은 '미래 경주를 보다 안락하고, 잘 살기 위해서'라는 강박감과 절심함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공기업 입지를 두고 민(民)―민(民) 간의 갈등이 극에 달하면서, '갈등지역(葛藤地域)'이란 오명을 쓰게 됐다. 문제의 발단은 지역 지도자가 한수원이라는 공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공약을 남발한 것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지도자 입장에서는 '유치 올인'을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행을 요구하는 동경주 주민들과 외부세력이 합쳐서 세력화(勢力化) 되자, 결국에는 공권력(公權力)이 개입되고, 50여 명의 주민들이 사법 처리되면서 휴전(休戰)이 됐다. 그러나 2009년 최양식 시장이 취임한 후 삭발과 함께 시장 직(職)까지 걸면서 한수원 본사 입지를 도시권으로 진입시키기 위해 초강수를 뒀지만, '부실전략'으로 실패했다. 지난해 여름일이었다. 휴가차 서울에서 경주 온 지인이 동해안을 갔다 오면서 질문을 했다. "토함산 기슭에 큰 건물이 어느 회사 콘도냐"라고. 곤란했다. 한편으로 언론인을 떠나 경주시민 입장에서 답변을 해야 하는데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고 일단 망설였다. 답하기를 "한수사(韓水寺)다" 2차 질문은 "세계적 기업을 경주지역 주요 길목에 건립해야지 이 산골에 처박은 이유가 뭐 냐" 그의 입장에서는 거대 공기업이 도시와 동떨어진 곳에 건립될 구체적인 이유를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이것이 경주시민의 민도다. 그렇다. 경주 민도는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견인차 역을 할 공기업의 명예를 무참히 짓밟아 버렸다. 천년의 부활을 꿈꾸었던 경주가 지역이기주의와 지도자의 실기(失機)로 한순간에 몰락의 길을 선택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책임은 누구도 지지 않고 반성조차 않고 있다. 경주시민 스스로가 발목을 잡어면서 선택한 곳은 험지(險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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