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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로에서-수운 최제우 선생의 동학사상 고찰
강병찬<문화부 차장>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6년 02월 17일(수)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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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어려움을 당할 때 생존 본능이 두드러지듯 국가와 민족도 위기에 처하면 민족성이 더욱 표출된다. 우리민족과 같이 신념과 자존심이 강하고 문화를 숭상하는 문명국민의 자구 노력은 가히 초월적인 정신력을 표출해 새로운 전환이 올 때 그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 원동력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음도 물론이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으로 단군 조선이 개국한 이래 우리의 정신과 역사는 면면히 흘러왔다. 시대가 흐르고 왕조가 바뀌면서도 외적들의 갖은 침략을 거뜬히 이겨내 끝내 고유(固有)함을 지켜가는 것은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입증하고도 남는다. 조선 후기는 어느 시대보다도 혼란하고 어려운 때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도 왕조는 이어졌고, 체제는 그대로 유지됐다. 제국주의란 이름으로 조선에 밀어닥쳤던 서양 세력들은 르네상스와 산업혁명을 거쳐 막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서양 문물을 조금 일찍 받아들였던 일제는 같은 동양권의 우리를 도와주기는커녕 호시탐탐 야욕만 키워가고 있었다. 일부 지배 계급이 각성해 실용과 개화를 주창했지만, 그들도 탄압을 받았거나 계급적 시대적 세계관적 한계를 갖고 있었다. 사회가 이율배반(二律背反, Antinomy)이었다. 그것은 고질적인 망국의 병폐(病弊)였다. 이 시기에 민중들에게는 홍익인간의 숭고한 뜻을 되살려 자유롭고 평등하며 평화로운 자주국가를 세울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벅차올랐다.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선생이 이런 때에 경주시 현곡면 구미산 자락 용담정에서 동학을 선포한 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다. 동학은 우리민족 고유의 경천(敬天) 사상을 바탕으로 유(儒)·불(佛)·선(仙)과 도참사상, 후천개벽사상 등 민중 사상의 융합이다. 그것은 어떠한 국난에도 그 본질이 꺾인 적이 없는 한민족 불굴의 정신이다. 동학이 선포된 1860년대 당시 조선 사회는 심각한 혼란과 위기에 놓여 있었다. 오랜 기간 외척(外戚)의 세도정치가 지속되면서 국가 기강이 문란해져 지방관료와 토호들의 횡포와 착취는 심각한 지경이었다. 게다가 자연재해와 전염병이 주기적으로 반복돼 농민들의 삶은 매우 피폐해졌다. 서구 열강의 중국 침략 등으로 외세에 대한 위기감은 서학에 대한 반감으로까지 커지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것은 우리가 지켜야하고, 홍익인간을 향한 발걸음은 한시도 멈출 수 없다. 지배계급과 외세가 자유롭고 평등하며 평화로운 자주국가를 과연 세워줄 것인가? 그것은 이율배반이다. 그들은 본질상 점령과 폭압과 착취를 내포하고 있다. 그들의 숨긴 발톱은 선량한 민초들에게 가장 먼저 노출된다. 그당시 수운 선생은 만고 풍상을 겪고 경주에 돌아 온 뒤 시천주(侍天主) 사상에 기초해 민중의 평등의식을 반영하고 고취했다. 여러 민중 사상을 흡수해 지배층의 성리학에 대항해 사회 변화에 대한 열망과 의지를 뒷받침할 수 있는 새로운 사상의 기초를 제공했다. 그의 사상은 제2대 교주 최시형에 이르러 '사람이 하늘이니(人是天) 사람 섬기기를 하늘과 같이 하라(事人如天)'는 것으로 발전했다. 제3대 교주인 손병희에 이르러서는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으로 체계화됐다. 1894년 녹두장군 전봉준에 의해 발발한 동학농민전쟁에서 부르짖은 '교조 신원운동(伸寃運動)'은 자유권, '척왜양(斥倭洋)'은 자주권, 보국안민(輔國安民)은 행복추구권으로 현대 헌법의 기본적 인권론과 상통한다. 동학의 외침을 귓등으로 흘렸던 허울만 남은 고종황제가 지배세력과 외세의 야욕을 비로소 깨달았지만, 귀족세력들의 매국 망동에 이은 일제의 국권찬탈을 막을 수 없었다. 지금도 그 매국노들의 후손이 일제에게 받은 막대한 재산조차 일제법령과 체제를 의용(依用)한 현행 실정법상 보호돼 회수가 지지부진할 정도다. 하지만 동학의 나라사랑 민족사랑은 끊임이 없었다. 동학농민운동은 결국 막대한 사상자를 내고 좌절됐으나, 후일 동학농민군은 항일의병항쟁의 중심세력이 됐다. 그 맥락은 3·1독립운동 때 손병희 선생이 독립선언 33인 중 대표로 이름을 올림으로써 오늘날 대한민국 건국의 원동력이 됐다. 1919년 3월1일은 동학농민군 수만명을 참살하고, 이어 수십만명의 가족들을 압제토록 방임한 고종황제의 국장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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