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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혁명, 세계기록유산 등재'삼수'도전
준비 부족으로 두 번이나 실패
기념재단, 추진안 마련 내년 재도전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6년 02월 02일(화)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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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경북연합일보 | |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 등재 선정에서 지난해까지 두 번이나 좌절돼 치밀한 준비가 요구된다. 특히 등재 신청을 낸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과 전북 정읍시가 '교조신원'을 기치로 내걸었던 동학농민혁명에서 교조인 수운 최제우 선생 관련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또 혁명 좌절 후의 각종 역사적 사실들도 '자료 부족' 등을 이유로 결국 빠뜨림으로서 탈락을 자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운 선생은 경주시 현곡 출신으로 현곡면 가정리에는 선생의 생가가 복원돼 있다. 선생이 수도를 했던 '용담정' 일원은 성역화 사업이 진행 중에 있다. 수운 선생은 그곳에서 동학을 창시했고, 교리를 선포했다. 동학 농민군이 조일 연합군에 의해서 패전해 3~5만명이 전사했던 '우금치전투' 이후에도 관군과 일군의 약탈 방화로 무고한 농민 30~50만 명이 피해를 입었다. '인내천 사상'을 근간으로 한 동학은 조선 민중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다. 일군을 끌여들여 민중을 탄압한 조선 조정은 자충수로 인해 국권상실의 단초가 됐다. 더불어 천도교로 탈바꿈한 동학이 3·1운동을 주도했던 역사적 흐름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3·1운동은 천도교와 기독교(개신교) 인사들이 주종을 이뤘고, 상해임시정부로 이어졌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3·1운동의 법통을 이어 받는다"고 헌법 전문에 명시돼 있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의 기록물은 1894~95년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에 관한 종합 기록이다. 문화체육관광부 특수법인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지난 8월 동학농민군의 임명장·회고록 등 농민군 기록(27건)과 농민군 진압에 가담한 진압군의 공문서를 비롯한 조선 정부 기록(115건) 등 모두 171건을 문화재청에 신청했다. 앞서 전북 정읍시는 동학농민혁명 2주갑(120년)을 앞두고 2013년에 관련 지역 자료 50건, 개인 자료 15건, 정부 자료 9건 등을 문화재청에 신청했었다. 당시 문화재위원회는 "역사적 가치가 높지만 기록물에 대한 더 많은 연구와 함께 보존관리 문제를 선결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검토의견을 냈다. . 준비 부족으로 탈락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은 문화재청이 신청을 받기 한 달 전인 지난해 6월에야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을 위원장으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추진위'(19명)가 꾸려져 준비 기간이 3~4개월에 그쳤다.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해서는 보통 4년 이상이 걸린다. 이에 따라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의 등재 추진이 여러 차례 좌절됐던 것.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은 올해 2~3월 중 등재추진위원회 회의를 열고, 2017년 문화재청 선정을 위한 추진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동학농민혁명 기록물 기증·기탁 운동도 전개해 대상도 확대할 방침이다. 문화재청은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을 2년마다 받는다. 경주시는 그간의 '동학발상지 성역화' 사업을 올해도 추진하고, 수운 선생에 대한 선양사업을 벌이고 있다. 경주시의 세계기록유산 추진 의사는 아직 없다. 지난해 11월6일 경주시 주최의 동학인문포럼에서는 윤용섭 한국국학진흥원 부원장의 '한국 전통사상과 동학', 박임관 경주학연구원 원장의 '동학발상지 경주의 위상 제고', 정진숙 방정환한울어린이집 원장의 '동학정신의 현대적 계승', 김문기 경북대교수의 '동학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방안' 등 4개 부문의 연구 주제 발표가 있었다. 강병찬 기자 jameskang65@kby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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