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홍동흠 시사칼럼니스트 | | ⓒ 경북연합일보 | |
경상북도의 새로운 역사가 이달부터 시작된다. 도청사 이전으로 대구청사의 시대를 마감하고 안동·예천권의 신도시 청사에서 업무가 개시되는 것이다. 아직 준비부족으로 모든 업무를 새청사에서 보는 것은 아니지만 수도이전으로 역사적 첫 업무를 보게된다는 사실 자체가 경북의 새시대 전개를 의미하는 것이다.
새시대는 새로운 도약과 영광을 실현하는 꿈을 품고 있기 때문에 경북도민들은 물론 경북의 발전을 성원하는 모든 이의 기대와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최근 경북처럼 도청사 이전을 했던 전남과 충남의 경우가 기대했던 만큼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경북에도 이 같은 걱정의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다른 지역의 도청이전과 달리 큰 꿈을 품어보는 것은 안동·예천권에 지역행정수도가 된 것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120년 전에 이 곳이 지역행정의 중심이 된 적이 있었던 까닭이다.
경상도는 신라의 발상지고 통일신라의 중심지인 만큼 일찍이 한반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주도해왔고 민족문화와 민족정체성의 모태였다. 백두대간과 낙동정맥, 낙남정맥이 분지처럼 둘러싼 이 땅에 낙동강이 흘러내려 한 줄기의 물을 먹는 공동체를 이루어 오면서 태산교악(泰山嶠嶽)과 닮은 성격의 주민들이 어울려 살았다.
그러나 행정적으로는 하나의 구역에서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지기도 했으나 90년대들어 현재와 같은 대구, 경북, 부산, 경남, 울산 등 다섯 구역으로 정착되었다.
안동·예천권이 광역행정권의 수도가 된 것은 이 지역이 1895년 안동부로 승격하면서 지역의 행정중심이 되었다가 이듬해 없어졌고 이번에 두 번째로 광역행정권의 수도가 된 것이다.
우리의 역사에서 경북권이 주도적 역할을 했던 것은 크게 세 번 정도였다고 할 수 있다. 신라와 통일신라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고려 말 성리학이 수입된 후 조선조 전기 경북의 유림이 주축이 된 사림파가 집권했던 시기, 건국이후 5.16과 함께 시작된 산업화의 전성기로 손꼽을 수 있다.
특히 미국, 일본 등 근대화된 해양세력이 일제침략초기 경부선·경의선철도를 부설했고 건국 후 남북분단과 함께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경북이 한반도 발전의 중심축에 놓이게 되었고 그것이 산업화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북방외교의 성과로 중국과 러시아가 한반도 발전의 새로운 전기를 가져오면서 서남해안과 강원권이 새로운 발전축이 되면서 경북은 수혜의 중심에서 멀어지게 되었고 그것이 침체의 근본요인이 되어왔다.
그러나 이제 도청소재 신도시는 세종시와 같은 북위36.36도에 놓이게 되고 세종시까지 새 고속도로로 100Km, 충남 신도청을 거쳐 서해안까지는 1시간30분 거리에 놓이게 된다. 물론 신도청은 동해안의 영덕과도 고속도로로 지척이 된다.
북방시대의 발전축에서 멀어졌던 경북은 기존 남북 발전축과 함께 신행정수도와 서해안 발전축에 편입되는 전기를 맞게 되는 것이다. 경제지리적, 행정지리적, 정치지리적 환경이 바뀌게 된 것이다.
이제 신도청시대의 경북도민들은 역사상 경북민이 한반도의 중흥을 세 번이나 주도했던 경험과 정신을 살려 되찾은 한반도 발전축의 달라진 환경을 또 한번의 도약을 위한 디딤돌로 삼아야 한다. 2차대전 후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기적의 대한민국은 경북에서 연원한 화랑정신, 선비정신, 호국정신, 새마을정신, 2·28정신이 그 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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