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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선화 문화재청장이 경주 사천왕사지를 방문하여 "일제에 의해 잘려진 강당지 등 사천왕사를 모두 발굴·복원하고, 현대적 고품격의 콘텐츠를 개발해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역사유적과 관광자원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천왕사지는 역사적으로나 문화사적으로나 매우 중요한 의의와 가치를 지니고 있음에도 일제강점기 때 절터를 가로지르는 철로를 놓으면서 절터가 크게 훼손되었는데 이제라도 발굴·복원한다니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경주시 배반동 낭산 자락에 있는 이 사천왕사지는 신라시대의 절터로 사적 제8호이다. 당나라가 50만 대병을 일으켜 신라를 공격하자 부처님의 힘으로 당나라를 퇴치하기 위하여 창건한 절이다. 또한 삼국 통일 이후에 발전된 형식을 갖춘 쌍탑가람제에 의한 최초의 사찰이기도 하다.
선덕여왕, 태종무열왕, 문무왕, 신문왕의 설화들은 모두 이 절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고, '제망매가'와 '도솔가'라는 향가로 유명한 월명스님이 살던 절이기도 하다. 이 절 동편에 비신(碑身)과 거북의 머리가 없어진 귀부 2기가 있는데 이는 무열왕릉의 귀부에 버금가는 걸작이다.
지금 경주박물관에 보관 중인 문무왕릉비도 본래 사천왕사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현재 남아 있는 귀부(龜趺) 2기의 비좌(碑座) 구멍과 대편의 하부에 돌출한 촉의 치수를 대조한 결과, 서쪽의 귀부가 문무왕릉비를 세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무왕의 유언에 따라 봉분을 쓰지 않고 화장하여 동해에 뼈를 뿌렸다는 기사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전하므로 사천왕사 근처에서 화장하여 부근에 의릉(義陵)을 만들었거나, 문무왕이 사천왕사를 창건하였으므로 능비만을 절에 건립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처럼 사천왕사지는 풍부한 설화가 담긴 유적지임이 분명하다.
"미국 허리우드 영화계가 요즘 동양에 눈을 돌리는 추세인데 우리나라가 ICT(정보통신기술) 강국으로 자리매김한 만큼 IT산업-삼국유사-경주문화재를 접목해 세계가 깜짝 놀랄 고급스런 문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나 청장의 말대로, 사천왕사지는 유적으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고부가가치의 관광자원임이 분명한 만큼 발굴과 복원을 시급히 진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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