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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역사의 진실을 간파하라
지방자치부장 이원우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6년 01월 17일(일)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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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지방자치부장 이원우 | | ⓒ 경북연합일보 | | 세 끼 식사보다 역사(歷史)가 더 좋다는 사람이 있다. 역사를 배우는 의미는 어디에 있을까. 그 하나는 사물을 크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길을 걸을 때도 아래만보고 가다가는 오히려 길을 헤매고 만다. '표적(標的)'이 될 만한 큰 것을 주시하며 그것을 '목표'로 나아가면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개인의 인생에서도 그렇고 사회와 미래를 생각하는데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래서 역사는 전 시대를 알 수 있고, 현재 그리고 미래에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해 주는 '스승'과도 같은 것이다. 역사를 배우는 것은 자신이 그 시대를 사는 것과 같다. 우리네가 역사에서 쉽게 접하는 것이 이른바 '권력투쟁'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꼭히 권력놀음이 아니라도 사회, 문화, 경제 등 역사의 장르는 다양하다. 역사에는 뜨거운 피가 들끓는 혁명가도 있지만 비열한 배신자도 있다. 영화를 누리는 권력자가 있는가 하면 비극적인 영웅도 있고 평화를 찾아 유랑하면서 역사를 남긴 이도 있다. 역사를 인간의 마음에 비친 '영상'이라 말하고 싶다. "도도하게 흐르는 역사라는 대하(大河)의 가운데에 있는 자신에 대해 생각 하라"라는 명언도 있다. 역사를 깊이 배운 사람은 자기의 뿌리를 인식하고 자각할 수 있다. '역사를 아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아는 것과 통한다. 나를 알고 인간을 알수록 역사의 실상이 보인다고 했다. 그것이 사관(史觀) 즉 역사관이라 배웠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 '역사는 되풀이 되지 않는다'는 양비론에서 어느 쪽이 정답이다는 결론은 없다. 다만, 인간의 뇌 구조는 역사를 쫓아가는 경향성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역사를 '거울'삼아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 가는가 하는 것이다. 역사는 이름있는 정치가가 만드는 것이 결코 아니다. 역사의 중심에는 언제나 이름없는 민중이 있었다. "역사는 중요하다. 역사는 과거에서 현재, 현재에서 미래로 또 평화를 목표로 하는 길잡이다"고 누군가 말했다. 지금 남아 있는 역사 전체를 개인이 파악하기는 매우 어렵다. 역사를 통해 인간의 나쁜 경향성을 알게되면 나쁜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게 된다. 나쁜역사를 되풀이하는 것은 '역사의 교훈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역사를 통해 '진실'을 판별하는 눈을 갖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폴레옹은 '역사는 합의하여 조작한 이야기'라고 했다. 어떤 경우에는 진실과 정반대로 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전해지지 않는 더 중요한 것도 분명 있을 것인데 말이다. 역사학자들은 "책 속의 역사는 오류투성이다"고 주장한다. 가령 십자군의 역사를 보자. 십자군 전쟁에 대해 유럽 측과 아랍 측의 기록에는 공통되는 부분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유럽과 아랍이 각기 자신들의 입장에서 역사를 기록했다. 국내 문제로 위안부 문제가 있다. 우리와 일본과의 시각차이는 현저한 것처럼 말이다.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따라서 병신년부터라도 자라나는 후손과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 역사는 정확히 기록돼야 하고 분명한 교육체계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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