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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疏通)의 조건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6년 01월 03일(일)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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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한상준
경주시월성원전·방폐장민간환경감시기구 소장 | | ⓒ 경북연합일보 | | 소통(疏通, Communication)은 사전적으로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이라는 뜻이다. 현대사회의 가장 큰 화두로서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소통은 학문적이고 교과서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하고자 하면 뜻대로 잘 되지 않는 게 소통이다. 자칫 잘못하면 불통(不通)만 초래할 뿐이다. 필자는 현장에서 원자력발전소 및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처분장에 대한 안전감시를 수행하는 역할을 수행한 다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통은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직접 현장에서 보고, 느끼고, 실천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체득한 경험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소통'의 가장 먼저 선행이 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경청(傾聽)'이다. 말 그대로 귀를 기울여 듣는다는 뜻이다. 가장 힘든 일이고 어려운 부분이다. 과거에는 웃어른, 아이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자 또는 듣는 시대였다면 현대사회는 듣기보다는 자기주장을 뚜렷하게 잘 피력해야만 인정을 받는 시대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경청하는 자세가 결여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해관계가 있는 상대방과 갈등을 해소하고자 한다면 내 주장은 잠시 접어두고 들어주는 경청의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상대방이 나에게 다가올 것이다. 두 번째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었으면 왜 그렇게 주장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는가 하는 '이해(理解)'를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듣기만 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더 이상 상대방과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원자력발전소 주변지역은 사업자와 주민 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현장이다. 이 상황에서 사업자는 안전하게 원자력발전소를 운영하는데 왜 주민들은 안전문제를 계속 제기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것이다. 주민은 어떠한 문제로 안전에 우려를 나타내는데 왜 사업자는 요지부동인가? 하는 의문이 들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사업자는 주민의 입장에서, 주민은 사업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것이다. 이게 바로 '이해'인 것이다. 현대사회의 화두인 소통에 있어서 경청과 이해는 어느 정도 진척을 보이고 있다. 너도나도 소통을 부르짖고 있고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지막 단계인 '배려(配慮)'는 아직까지도 부족한 게 현실이다. 배려는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쓰는 것이다. 원자력발전소 안전에 대해 정부나 사업자는 현장에서 경청하고 이해를 하지만 막상 자기 자리로 돌아가면 내 할 일은 다했다는 식으로 끝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는 주민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판단된다. 아주 소소한 문제라 할지라도 배려 즉, 적절한 조치를 위한 행동을 보여준다면 어느 누가 상대방을 존중 해주지 않을 것인가? 이러한 소통의 절차라고 할 수 있는 경청, 이해, 배려의 선순환이 지속 가능하게 계속 이어진다면 조금은 시간이 걸릴지는 몰라도 하나씩 문제가 해소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는 정부나 사업자에게만 해당하는 덕목이 아닌 주민도 해당하는 소통의 방법일 것이다. 이해관계가 많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로서는 단시간에 모든 갈등을 해소할 수 없음을 우리 모두 익히 알고 있다. 그나마 이 시간을 단축시키고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자 한다면 경청, 이해, 배려의 덕목을 힘들더라도 꾸준히 하고자 노력한다면 우리 모두 상생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고진감래(苦盡甘來)의 심정으로 먼저 경청을 시작하는 사람이 진정한 소통의 참맛을 느낄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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