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박정웅 행정학박사 | | ⓒ 경북연합일보 | |
오늘날 한국인은 서로가 살고 있는 한반도에서 남북으로 나뉘어져서 각기 다른 정치형태로 살아가고 있다.
흔히 우리민족 즉, 한족(韓族)은 한인(韓人)이라고도 하며, 조선족, 고려인 등으로 불리우는 몽골로이드에 속하며, 우랄 알타이어 계통의 언어인 한국어를 사용하며, 고유한 문자인 한글을 같이 쓰고 있다.
즉, 한반도와 만주지역에서 청동기 시대부터 문화적 공동체를 이루며 생활해 온 혈연적 동일성을 지닌 단일 민족이다. 한반도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서로 교류, 융합하면서 같이 해 온 민족의식의 형성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 전통적 생활 문화를 통하여 다듬어진 민족공동체이다.
우리민족사에서 신라의 삼국 통일은 한민족의 문화적, 언어적 동질성을 높여 우리민족의 문화적 기반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삼국 통일과 동시에 북방의 발해와 대립하는 양상에서 하나의 공통된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우리 민족이 하나의 동질성 형성의 결정적인 시기는 고려시대이후로 한민족의 단일국가로 통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을 중심으로 이어온 외세에 대한 결정적 민족적 정체성을 마련한 신라와 고려 두 국가 체제에서 개별적 특성을 지닌 두 수도에 대한 논의는 다소 이질적이지만 현재적 시각으로 조명한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사항이다.
즉, 신라의 삼국통일은 한민족의 문화적, 언어적 동질성을 높여 민족문화의 기반을 형성하는 반석을 마련하는 터전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발해의 유민까지 통합한 고려는 우리민족 의식의 형성과 언어적 통합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역사적 고유문화의 형성을 이끌어 온 중심으로서의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와 고려의 도읍지인 개성을 조명해 보자.
경주에 대해서는 현재적 상황에서 삼국시대 이후에서부터 형성되어 온 문화적, 전통적 가치의 함축에 대해서는 오늘날 역사적 관점을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그러나 제2차 대전이후 분단된 정치적 요인은 같은 민족적 유산이지만 현재적으로 서로 접할 수 없는 분단으로 인한 어려움을 극복한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실정이다. 즉, 북한에 위치 한 개성의 문화유산에 대해서는 단지 과거의 기록과 간접적으로만 접할 수 있으며, 역사적으로 밝혀진 과거사를 거론할 따름이다.
현재로서는 직접 접할 수는 없으나 개성은 우리가 살고 있는 경주와 더불어 한반도의 역사적 가치가 함유된 고려의 수도임을 지울 수 없다. 즉 고려시대의 수도로서의 개성역사지구는 경주와 마찬가지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문화적 역사도시이다. 고려과학의 중심이 되는 개성 첨성대며, 포은 정몽주의 충절이 배인 선죽교와 개성의 성곽과 만월대 등의 숫한 역사적 가치를 현재로서는 공유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 개성은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송도삼절(松都三絶)인 박연폭포, 미모와 식견으로 당대를 휘저은 조선 최고의 명기(名技)인 황진이 그리고 조선지성의 자존인 서화담(경덕)의 정신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숨은 얘기 같은 지족선사의 30년 면벽(面壁)의 수도사가 황진이에게 홀린 도로아미타불은 현재적 해학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개성의 역사 속에 숨겨져 있는 역사적 흔적들이다.
그렇다. 이참에 경색되어 분단된 한반도의 정치적 현실을 그냥 고착된 상태로만 둘 것이 아니라 민족적 자긍심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역사와 문화적 요소들에 대한 동질성을 서로 개방하여 통일의 기반을 조성하는 가치의 발판으로 다듬어낸다면 한반도의 정치적 긴장을 평화 체제로 이끌어 낼 수 있는 계기로 다듬어져야 할 것임이 새로운 민족적 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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