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문무학 문학박사 | | ⓒ 경북연합일보 | |
2015년의 12월도 어느덧 중순을 지나간다. 이 무렵에 많이 연주되는 클래식은 베토벤 교향곡 제9번이다. 이 곡이 연말 연주회의 단골 레퍼토리로 자리 잡은 이유는 제4악장 '환희의 송가(Hymn der Freude)' 에서 메시아적 희망을 품은 합창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때문에 '합창 교향곡' 으로 불리기도 한다.
베토벤 시대에는 교향곡에 성악을 사용하는 예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것은 그야말로 혁명적인 시도였다. 당시 몇몇 평론가들은 교향곡에 사람의 목소리를 넣은 것은 큰 실수라고 비난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곡은 2003년 유네스코에 세계 음악 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세계인이 아끼는 음악이 되었다. 불후의 명작이 된 베토벤 교향곡 제9번은 원래 성악이 없는 4악장의 기악곡으로 만든 후에 10번 교향곡 전체에 성악을 넣는 독일 교향곡을 구상하였으나 갈등하다가 9번 4악장에 합창과 성악을 넣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베토벤은 이곡을 작곡할 당시 완전히 청력을 잃었으나 음악적 감각과 도전정신만으로 작곡하였다. 실러의 시 '환희의 송가' 를 테마로 20여 년이나 구상하여 12년에 걸쳐 작곡하였다고 한다.
실러의 '환희의 송가'는 "오 벗들이여! 이 노래가 아닌, 더욱 즐거운, 그리고 기쁨에 넘치는 노래를 함께 부르자! 환희여! 아름다운 주의 빛, 낙원의 여인들이여, 정열에 넘치는 우리들은, 그대의 성소에 들어가리! 가혹한 세상이 갈라놓았던 것들을, 그대의 매력이 다시 결합시키는 도다. 그대의 고요한 날개가 머무는 곳에서, 모든 사람들은 형제가 된다."(하략) 이 시가 바탕에 깔려 인류를 화해시키는 음악으로 불리기도 한다.
1824년 5월 7일 베토벤 교향곡 9번의 초연 때는, 영화와는 달리 베토벤은 이 초연에서 지휘를 하였다고 할 수 없다. 무대 위에서 악보의 페이지를 넘기면서 팔을 휘둘렀으나 악장인 미카엘 움라우프와 합창단 지휘자 슈판치히는 합창단과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절대로 작곡자에게 상관하지 말고 그들의 지휘를 따르라고 교육시켰다. 이는 귀가 안 들려 악단이 무엇을 연주하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던 베토벤의 청력 때문이었다.
그에게 지휘를 하도록 한 것은 베토벤 음악의 위대함에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가 지휘를 하기 어려운 점을 알고 있었지만 그에게 초연 지휘의 영광을 안겨주고 싶었으리라. 그에 대한 존경심의 표현으로 말이다.
연주가 끝나고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지만 베토벤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보다 못한 알토 독창자가 베토벤을 돌려 세웠을 때 비로소 관중의 환호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시가 작곡의 바탕이 되어 음악이 되듯이 음악은 또 그림의 소재로 연결되기도 한다. 평화와 인류애를 감동적으로 전하는 베토벤 교향곡 9번, 그 명곡을 그림으로도 만날 수 있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베토벤 프리즈, 환희의 송가' 가 그것.
장미꽃이 만발한 천국의 정원에서 연인들이 포옹하면서 열정적으로 키스를 하고, 아름다운 여성 합창대가 연인들을 에워싸고 환희의 송가를 부르는 것이다. 아름다운 소리, 아니 음악의 그림이다.
실러의 시 '환희의 송가' 다음 연을 읽으면 클림트의 그림이 더욱 가까이 다가선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태초의 환희를 가슴에 담고, 모든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장미 핀 환희의 오솔길을 간다. 환희는 우리들의 입맞춤과 포도주, 그리고 죽음조차 빼앗아 갈 수 없는 친구를 주고 땅을 기는 벌레조차도 기쁨은 있어, 천사는 신 앞에 선다" 고 읊었다. 이런 관계를 보면 예술은 그야말로 하나인 듯한 데 세상도 그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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